거울의 방향
강영은
웃는 입장을 버린 건 아니지만 얼굴을 더듬으면 직박
구리가 날아간 하늘과 직박구리를 날려 보낸 저수지가
있다
안색이 변하는 건 아니지만 얼굴을 뒤집으면 물속에
거꾸로 선 나무와 그 나무를 받치고 있는 저수지가 있다
말을 하는 건 아니지만 오목하고 볼록한 얼굴을 맞바
꾸면 태양의 불과 달의 물을 보여주는 저수지가 있다
구리와 돌로 네 얼굴을 만들어 줄까, 깊고 우묵한 동
굴을 파줄까, 견본을 보여주면 종교 앞에 선 것처럼 조
금 불행한 얼굴
듣는 입장을 바란 건 아니지만 파형波形이 반복되는 얼
굴을 꺼내면 눈을 깜빡이는 저수지가 있다
웃고 있다고 믿는 눈의 오독에 대해 얼룩은 얼룩진 방
향을 갖는다
부지중, 나는 얼굴을 벗어나는 습관에 젖어버렸다 새
들의 비상과 추락에 전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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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의 방향”을 극단화하면 보이는 현상뿐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심연의 세계까지 반사된다. “거울의 방향”에 따라 “얼굴”에서 “직박구리가 날아간 하늘과 직박구리를 날려 보낸 저수지“가 비치기도 한다. “안색을 변화”시키지 않고도 “얼굴을 뒤집”어 “물속에 거꾸로 선 나무와 그 나무를 받치고 있는 저수지”를 찾을 수 있다. 또한 “태양의 불과 달의 물”을 얼굴에서 탐사해내기도 한다. “얼굴”의 존재성은 물론이고 “얼굴”이 내면화하고 있는 기억의 세계까지 규명하고 있다. “거울”이 표면적, 의식적 현상뿐만이 아니라 심층적, 무의식적 내면까지 투사하고 있는 것이다. (홍용희, 문학평론가)
시집 『상냥한 시론』황금알 시인선 174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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