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호자객관
문정영
등이 흔들리는 객관 입구에 소리를 뿌려 놓는다
자객은 보이지 않고 칼날만 번쩍인다 순간 누군가 가
슴을 부여잡고 뒹군다
어설프게 등을 보이면 어둠에 찍힌다
둔산 을지병원 뒤 언제부터 이런 자객관이 있었나
중환자실 건너 장례식장 불빛이 검다
칼이 저지른 짓인가
자객처럼 몰래 객관에 든다
달빛에 들킬까 봐 꼭꼭 문 닫아걸어 두거나 다가올
작별도 덮어 두는 곳
그곳에서 칼날을 휘두른다 마른 잎 밟는 소리 들리고
네가 베어지고, 아직 심장이 뜨겁다
삼호자객관에 드나들던 불빛들 하나둘 쓰러지고
분명 너를 베었는데 가슴은 내가 아프다
질문
무언가를 물어도 엉뚱해지는 계절,
길의 바깥쪽에서 사람과 길은 서로에게 깊어진다
내 눈가로 잠자리 떼가 지나는 오후 5시, 의문이 떠
있다
묻고 답하는 것이 한때의 유머처럼 장난스러운 적이
있다
어떤 질문에 엉뚱한 답은 이별 후에 발견된다
그러나 지금 내 눈에 어떤 증세가 들어서고, 흐린 답
변뿐이다
이제 명징하게 답하지 않아도 되는 나이는 아닐까
쓸모 있는 것이 쓸모없는 것과 차이가 없을 때
물음의 지붕이 곡진해진다
높은 곳에서 보면 지금의 어떤 질문에 대한 답은 불
가설이다
시집 『꽃들의 이별법』,시산맥 감성기획시선 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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