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네 번째 서랍

계단/신동호

Beyond 정채원 2020. 12. 25. 00:09

계단

 

구석기가 끝나갈 무렵부터 계단을 오르고 있다.

동굴벽화 몇 곳에 계단이 그려져 있고

점토판 설형문자는 "계단을 올랐다"로 해석되었다.*

 

계단 끝에서 신들을 만났다는 소문이 돌자

엎드리고, 경배하고, 움츠리는 버릇이 생겼다.

길과 이어진 계단에서 버려진 육체들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막다른 계단은 따뜻했다.

 

"벽돌 창으로 새어 나온 불빛이 계단을 비추었다.

그 빛은 언제나 나에게 사랑의 등불이 되어주었다."**

스무 개의 절망과 한 개의 사랑을 품은 채

늙은 봉우리로 가는 계단에서 네루다는 실종되었다.

 

지상의 계단이 왜 하늘을 향하는지 아직 모른다.

신에 가까이 갈수록 찰나만큼 수명이 길어질까,

시간은 계단 위에 아주 느리게 파고들었다.

 

 

*조르지 이글턴, 《계단의 상징, 신에게 가는 길》, 1965.

** 네루다, 《계단 끝 집》, 1971.

 

 

제2회 이용악문학상 수상작가 신작시 중에서, 《문학청춘》2020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