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네 번째 서랍

헛것을 따라다니다 외 2편/김형영

Beyond 정채원 2021. 2. 15. 20:27

헛것을 따라다니다*

 

나는 내가 누군지 모르고 산다.

내가 꽃인데

꽃을 찾아다니는가 하면,

내가 바람인데

한 발짝도 나를 떠나지 못하고

스스로 울안에 갇혀 산다.

 

내가 만물과 함께 주인인데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한평생도 모자란 듯 기웃거리다가

나를 바로 보지 못하고

나는 나를 떠나 떠돌아다닌다.

 

내가 나무이고

내가 꽃이고

내가 향기인데

끝내 나는 내가 누군지 모르고

 

헛것을 따라다니다

그만 헛것이 되어 떠돌아다닌다.

 

나 없는 내가 되어 떠돌아다닌다.

 

*「열왕기 하권」 17장 15절.

 

 

 

 

수술 전날 밤 꿈에

나는 내 무덤에 가서

거기 나붙은 내 명패와 사진을 보고

한생을 한꺼번에 울고 또

울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흘린 눈물을 담아보니

내 육신 자루에 가득했다.

살아서는 한 방울도 맺히지 않던

그 눈물

 

그랬구나

그랬구나

이것이 나였구나.

좀더 일찍

죽기 전에 죽었으면 좋았을걸.

 

 

 

따뜻한 봄날(꽃구경/장사익 곡 노래)

어머니, 꽃구경 가요.

제 등에 업히어 꽃구경 가요.

세상이 온통 꽃 핀 봄날

어머니 좋아라고

아들 등에 업혔네.

마을을 지나고

들을 지나고

산자락에 휘감겨

숲길이 짙어지자

아이구머니나

어머니는 그만 말을 잃었네.

봄구경 꽃구경 눈 감아버리더니

한웅큼 한웅큼 솔잎을 따서

가는 길바닥에 뿌리며 가네.

어머니, 지금 뭐하시나요.

꽃구경은 안하시고 뭐하시나요.

솔잎은 뿌려서 뭐하시나요.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너 혼자 돌아갈 길 걱정이구나.

산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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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15일 오전,

김형영 시인은 우리 곁을 떠나셨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꽃구경 중이실지...

부디 편히 쉬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