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나의 시 <낙원 빌>/정채원
낙원 빌
정채원
불빛을 등지고 앉은 내 뒷모습이 보인다 불빛을 마주한 상대방 얼굴을 볼 수 없다 604호 불빛에 먹혀버린 사람은 왼손을 들어 문을 가리킨다 808호에는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죽은 사람이 있다 곁에는 내 친구들 연락처가 적힌 수첩이 펼쳐져 있고 한 쪽 다리가 부러진 안경도 떨어져 있다 이인삼각 놀이를 하다 너는 발목을 나는 목을 부러뜨렸지 숨이 막혀도 서로 부둥켜안고 놓지 않았어 내가 가장 아끼던 모자는 화장실에 걸린 채 입을 꼭 다물고 305호 문이 잠겨 있다 문 앞에서 나와 한 아이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너는 꼭 내 어릴 때를 닮았구나 엄마의 심부름으로 아스피린을 사오던 나는 20년 후의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아이는 나를 피해 비상구 쪽으로 가려 한다 계단들 벽들 문들을 지나 어디에 있든 어디에 숨든 나를 피해가지 못한다 지하에서 백년옥 1층으로 오르는 계단에서는 갓난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내 생일은 첫눈 내리는 4월의 밤, 어떤 기억도 기대도 없이 한 사람이 낙원에 막 당도했다
『현대시』2013년 1월호
내가 읽은 나의 시/選 최정례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정채원
몇 년 전 3월 친구와 함께 매화마을을 찾은 적이 있다. 해마다 봄이면 남편과 매화를 보러 가곤 했다는 친구, 그 친구가 갑자기 남편을 잃었던 것이다. 눈부신 매화나무 사이를 걸으며 친구는 남편이 어딘가 가까이에 꼭 있을 것이라 했다. 보이진 않지만 그 존재를 느끼는 일, 나도 친구의 말에 어느 틈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우리가 볼 수도, 기술할 수도 없으나, 분명히 존재함을 알고 있는 어떤 현실……그 세계를 우리는 알려지지 않은 것, 파악할 수 없는 것이라는 부정적 개념으로 표시한다. 추상화와 더불어 우리는 그 보이지 않는 것, 이해할 수 없는 것에 직접 다가갈 수 있는 더 좋은 기회를 갖게 되었다. 왜냐하면 추상화는 직접적인 직관성 속에서 예술의 모든 수단을 가지고 무(無)를 묘사하기 때문이다.” 최근 가장 고가로 작품이 팔린다는 독일의 거장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말이다. 묘사를 포기함으로써 이 세상에 묘사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있음을 말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수 천 년 전부터 사람들은 신, 영혼, 그리고 사후세계 같은 것들을 끊임없이 예술적 언어를 바꾸어 가며 묘사하고자 시도해 왔다. 유한하고 늘 변하는 존재인 인간의 언어로는 정의할 수 없고, 인간의 척도로는 파악할 수 없으나 있으리라 믿어지는 그런 존재. 구상이라는 그림 안에 가둘 수 없는 세계를 그리기 위해 ‘윤곽 흐리기’, 즉 대상을 손으로 잡지 못하게 함으로써 작품에 최종적인 의미를 주지 않으려는 장치가 도입되기도 했다. 현대시에 있어서의 ‘모호성’도 무한대의 혼돈으로의 접근을 위한 도구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형언할 수 없는 것을 말하려는 사람들, 가장 불확실한 것을 얻기 위해 확실한 것을 걸어야 하는 사람들, 이룰 수 없는 것을 위하여 삶을 탕진해야 하는 그들은 바로 예술가들이다.
이따금 나의 삶을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면, 삶 이전과 죽음 이후의 풍경까지 펼쳐져 보일 때가 있었던 듯하다. 사후의 내가 지나온 나의 생을 바라본다면 어떨 것인가. 아니, 꼭 사후가 아니라도 마치 남의 생을 바라다보듯, 연극 한 편을 감상하듯 그렇게 느껴질 때도 있지 않은가. 삶 전체를 보다 객관적으로 보편적으로 조망해 보려는 것이다. 우리의 생을 하나의 건축물에 비유해 보자.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곳. 그곳에서 시간은 꼭 연속적이지 않다. 무대 위에 세워진 그 고층건물의 잘려진 단면을 통해 내부를 들여다본다. 각층마다 갓난아기 때부터 80이 넘어 죽은 나의 모습까지도 배우들처럼 등장시킨다. 어려서부터 허무주의자이며 비관주의자란 말을 들어온 나는 역시 ‘불빛을 등지고 앉은’ 뒷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거리를 두고 자신을 보는 자는 감상주의자는 아니다. 어머니도 딸도 그리고 그 누구도 늘 어딘가 아픈 사람들이어서 약 심부름을 그만둘 수는 없다. 십대의 나는 삼십대의 내가 되고 싶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누가 미래의 ‘나’를 피해갈 수 있을 것인가. 가려던 곳이 아닌 엉뚱한 곳에 도달하여 뒤돌아보게 된다. 진정 가려던 그곳은 어디였을까. 얽히고설킨 인간관계 속에서 생전에 가장 좋아하던 모자는 맘껏 써보지도 못하고 아끼기만 하다가 걸어두고 문득 떠나가는 것이리라. 그 모자는 돈일 수도, 명예일 수도, 자식일 수도 혹은 애인일 수도 있겠다. ‘첫눈 내리는 4월의 밤’에 태어난 사람에겐 그것이 시일 수도 있겠다. 좋든 싫든 알 수 없는 어떤 힘에 의해 바퀴는 계속 굴러가는 것이다. 어디선가 언젠가는 멈추겠지만 그렇다고 아주 멈추는 것은 아니다. 어디선가 언젠가 다시 시작되고 또다시 알 수 없는 방향으로 굴러갈 것이다. 어떤 기억도 기대도 없이 새로 시작되고 또 끝날 것이다. 연극 한 편이 끝나면 또 다른 연극이 시작되는 무대 위에서의 시간들, 천상병시인은 ‘소풍’이었다고 하지 않았나. 어떤 이는 ‘백년옥’이라 부르는 그곳을 나는 한 번 쯤 ‘낙원’이라고도 불러보고 싶은 것이다
김수영은 ‘시에 시적으로 된 말을 모은 것이 아니라, 모든 말이 시적인 힘을 지니도록 시를 썼으며’ ‘그에게서 처음으로 시적인 말과 일반적인 말의 차별이 완전히 사라졌다.’ 곧 무너져버릴 듯한, 곧 사라져버릴 듯한 현실을 시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현실을 시로 끌어올리는 일을 실천하기 위해 나는 앞으로도 시인으로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나는 굳이 어떤 양식이나 틀에 얽매이고 싶지는 않다. 현실의 확장이나 전복을 위해 안정과 나태를 가장 경계할 것이다. “나는 어떤 목표도, 어떤 체계도, 어떤 경향도 추구하지 않는다. 나는 일관성이 없고, 나는 무규정적인 것을, 무제약적인 것을 좋아한다. 나는 끝없는 불확실성을 좋아한다. 나는 스타일이 없는 것을 좋아한다. 사진, 자연, 나와 내 그림들―왜냐하면 스타일은 폭력이고, 나는 폭력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말은 같은 시기에 사진적 재현에서 회화적 추상까지 그 누구보다도 다양한 예술언어를 사용한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말이다. 그러나 자유는 또 얼마나 고독한 것인가. 고독 속에서 나는 결코 아무 것도 손에 잡지 못할지라도, 보이지 않지만 확실히 느껴지는 세계에 접근하기 위해 끝없이 시도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현대시학』2013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