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必/채상우 시집
必
꽃이 피어나려 한다 죽은 새가 이틀째 가만히 있다 움
직이질 않는다 꽃이 피어나려 한다 울지 않는 새가 소파에
차분하게 누워 있다 버려진 소파는 버려진 줄 모른다 버려
진 줄 모르는 소파는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꽃이 피어나려
한다 한쪽 다리가 부러진 탁자가 허공을 딛고 서 있다 허
공이 단단해지고 있다 꽃이 피어나려 한다 화분이 깨지고
있다 깨지고 있는 화분이 깨지려는 화분을 꼭 붙들고 있
다 이젠 더는 만나서는 안 될 이름을 불러 본다 속이 맑아
진다 흰 무지개가 해를 꿰뚫고 있다
‘틀림없이’ 아름답고 ‘마침내’ 아프다
상흔을 남긴 기억에 집착하며 과거를 반복해서 소환하는 것이 멜랑콜리적 주체라고 한다면 <필>의 시적 주체는, 여러 시에서 드러나는 애상의 흔적에도 불구하고 멜랑콜리적 주체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 시집의 중심 시제는 과거 시제가 아니라 현재진행형 시제이기 때문이다. 거듭 고쳐 쓰는 행위는 과거를 되새김하기 위한 것도, 상처를 쓸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계속해서 ‘당신’과 ‘나’의 관계의 사선을 넘나드는 행위다.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 시제 속에서 ‘당신’과 ‘나’의 만남은 종결된 사건이 아니라 계속 유보되는 사건이 된다. 요컨대 채상우는 불확실성을 필연으로 옮겨 놓고 현재를 연장한다. 무슨 뜻인가?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약속이 있었겠다고 믿음으로써 기억을 애상으로 채우는 일을 그치고 “검은 비니루” 한 장이 나부끼는 작은 사건들 속에서도, 다시 말해 미분된 시계(視界)에 포착된 모든 현실 속에서 ‘당신’의 소식을 듣기 위한 것이다. <필>에 가득한 것은 기억도 의지도 소망도 애도도 멜랑콜리도 아니다. 그것은 완결된 것과 개시되는 것 ‘사이’를 지키며 현재를 연장하는 이의 현실이다. 어서 오너라, 당신! (이상 조강석 문학평론가의 해설 중에서)
•― 추천사
‘필(必)’은 ‘반드시’, ‘기필코’, ‘틀림없이’라는 뜻이고, “평생 심장에 꽂힌 칼을 본떠 만든 것”이라고 한다. “심장에 꽂힌 칼”이라니, 그것은 필시 ‘회한’의 한 형상일 듯하다. 물그릇을 들고 자빠진 사람처럼 후회란 두 가지 아이러니에 직면해 있다. 한번 엎질러진 물은 다시 엎질러지지 않는다는 것이 그 하나이고, 책망감은 이미 엎질러진 물을 몇 번이고 다시 엎지르게 한다는 것이 다른 하나다. 반복과 지속은 회한의 방법이자 목표다. ‘대화공원 앞 삼사 차선에 로드킬된 고양이’부터 ‘뱀눈박각시나방을 떠메고 가는 개미’까지, ‘떨어져 터진 살구 알’에서 ‘십육 년을 함께 살다 죽은 개’까지 죽음은 시집 도처에서 나타나고 반복된다. 죽음이 편재해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각각의 죽음이 회한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저녁의 어스름이나 끝도 없이 내리는 비의 이미지도 마찬가지다. 죽음과 저녁과 비의 영원회귀가 새겨 놓은 회한의 형상이 ‘필(必)’이다. 회한 속에서 완수하지 못한 혁명과 연애와 무수한 생사고락이 ‘자기’를 벗고 다시 태어난다. 여름이 여름을 벗고, 참나무가 참나무를, 그늘이 그늘을, 붉은괭이밥이 붉은괭이밥을 벗고, ‘자기’가 되려 한다. 이 회한은 단지 지난 시간의 기억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재생되는 기억이기에 “生前과 死前은 같은 말이다”. 그래서 구 년은 하루 같고, 십사 년 동안 강릉엔 비가 내리고, 사월의 비는 오월까지 내리며, 이십일 년 전 삼양교회 중등부는 크리스마스캐럴을 아직까지 부르고, 스물여덟 해 전의 그 사람은 여태 차비가 없다. 같은 이유로 그는 “깨지 않는 꿈”속에서 찢긴 깃발을 부여잡고 서 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오늘 내리는 비가 오로지 비 오는 오늘을 완성’해 가듯이 ‘스스로 그러한’ 자재함과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하는 이유로 한 문장(세계)을 완성해 놓았다. 거기에는 살이 녹고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에도 붙들어야 할 이유가 있고, 그 세계는 마치 세상을 버린 사람의 노래처럼 가없이 슬프고 처연하게 가라앉는다. ‘틀림없이’ 아름답고 ‘마침내’ 아프다.
―이현승(시인)
•― 시인의 말
비가 온다 비가 온다라고 쓴다 고양이가 지나가고 있다 고양이가 지나가고 있다라고 쓴다 정말 고양이가 비를 맞으면서 지나간다 모처럼 아프다 아프니까 착해진다 아프니까 착한 마음으로 쓴다 공들여 쓴다 오늘은 하루 종일 구름을 볼 수 있겠구나 오랜만이다 오랜만이다라고 쓴다 오랜만에 착한 마음으로 비 내리는 하늘을 바라본다 바라본다라고 쓴다 당신처럼 바라본다 당신이 나를 바라보았듯이 바라본다라고 쓴다 이 문장은 나흘째 내리는 빗소리보다 어둡다 아직 그 사람은 어두운 여인숙에서 바쿠닌을 읽고 있을 것이다 어떤 문장은 아무런 의미도 없지만 기어이 써야만 한다 반드시라고 쓴다 必은 평생 심장에 꽂힌 칼을 본떠 만든 것이다 이를 악문다 이를 악문다라고 쓴다 이가 아프다 정말 아프다 아프니까 또렷해진다 또렷한 정신으로 라일락을 심으러 갈 것이다 이 비가 그치기 전에 그러나 비는 비가 온다라는 문장과 상관없이 그치지 않는다 그치지 않는 빗속에서 라일락이 꽃을 피운다 라일락이 피는 덴 아무 이유가 없다 그러나 한번 잘못 쓴 문장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 저자 소개
채상우
시집 <멜랑콜리> <리튬> <필>을 썼다.
채상우 시집『필』, 파란 시선 00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