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각夢, 정채원

간을 보다 외 1편/정채원

Beyond 정채원 2021. 9. 4. 01:08

  간을 보다

 

  

   신맛이 강할 땐 얼차려를 시키고

   비린내가 날 땐 식초를 한 스푼 넣고

 

   누가 애탕 맛을 탓하랴

 

   덜 익은 사랑도

   곯아버린 사랑도

   손맛에 달렸다

 

   금슬이 너무 좋은 옆집 부부에겐 식초를 찔끔 쳐야겠다. 낮이고 밤이고 개 닭 보듯 하는 아랫집 걔들에겐 핫쵸코가 필요해. 시럽을 듬뿍 뿌린 신에 대한 맹신은 당뇨를 불러올지도 몰라. 피검사 결과 신은 죽었다고 외치려나. 구경꾼들에겐 식초와 설탕을 번갈아 쳐도 뒤끝은 씁쓸하지. 까칠한 입맛을 어찌 다스릴까. 거품만 부글거리다 가라앉고 나면 처음과 다름없이 쓸쓸한 모래알들만 입안에서 쯧쯧거리고

 

   무명가수들이 순회공연하는 무대 위에서

   백댄서들은 다친 발목이 아물 만하면 춤을 추고

   아물 만하면 또 춤을 춘다, 너무 익어

   내일이 망가질 때까지

 

   불멸의 피클은 존재하지 않아

   달아나는 시간을 붙잡아 당절임을 하고 초절임을 해도

   유리병 속에 밀봉된 허무는 나날이 풍만해지고

 

   그래, 이만하면 이번 생은 충분히 슬펐어

   세상 여기저기 찔러봐도 눈물이 더 짜질 건 없어

   그럭저럭 살 만해

   견딜 만큼 간이 맞아

 

 

 

 

  그로테스크

 

 

   고대 황제의 온천장으로 통하는 지하통로에는 박쥐와 새와 인간이 뒤섞인 형상이 늘어서 있다. 황금궁전으로 가는 길에도 반인반수들이 출몰한다. 표범 몸뚱이에 사람머리를 달거나 제 몸통보다 큰 날개에 뒤덮여 얼굴이 아예 없어진 형상, 사람 몸통에 사자머리를 한 괴물은 난쟁이의 머리를 과자처럼 씹어 삼키는 중이다.

 

   대성당은 공사 중이던 첨탑 주변에서 발생한 화재로 지붕이 내려앉아버렸고 천년 고찰은 누군가 버린 담배꽁초로 주춧돌만 남아 있다. 검게 그을린 돌 틈으로 몇 년 만에 연두가 얼굴을 내밀고 있다. 매혹과 공포가 뒤섞인 표정의 바람이 머뭇거리다 달아난다.

 

   60대 여고동창들은 청춘을 원형대로 복원하겠다고 몇 년 전부터 계를 모았다. 그중 몇몇은 웃는지 우는지 모를 난해한 얼굴이 되어 선글라스에 모자까지 쓰고 다닌다. 최근엔 마스크까지 써도 더 이상 가릴 수 없는 슬픔이 남았는지 갑자기 호탕한 소리로 웃어댈 때가 있다. 무착륙 관광 비행을 예약해놓았는데 국제선 구간을 운행하므로 여권 유효기간 확인이 중요하다. 꼭 착륙해야만 맛인가. 발이 땅에 닿지 않아 일생을 허공에서 보내는 사람도 있다.

 

 

 

   『시와문화』 2021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