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DD에 가면 (외 3편)/ 정채원
DD에 가면 (외 3편)
정채원
먼지로 뭉쳐진 심장과 발가락
그리고 입술들이 사는 곳
두 사람의 입술이 겹쳐진다
먼지로 만들어졌지만 먼지 맛이 나지 않는다
향기롭고 따뜻하다
미세 먼지처럼 폐포를 뚫고
혈관으로 스며드는 단맛에 눈뜬 연인들
스모그 낀 하늘처럼 가슴은 답답하고 숨이 차고
이유도 모르는 채 어딘가 자꾸 아프고
손을 잡은 거리에서도 서로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목소리로 그 표정을 가늠할 뿐이다
문자 속에 이모티콘을 추가할 때처럼
잡은 손에 몇 번 더 힘을 주거나
깃털처럼 손바닥에 간지럼을 태우거나
부서질라, 이미 부서진 영혼이지만
흩어질라, 수 천 번 산산이 흩어진 몸이지만
달빛 아래
잠시 역광으로 빛나는 실루엣
상대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다
몇 만 광년을 달려온 듯 눈은 빛나고 싶겠지만
얼굴은 어디로 도망갔는지
누구에게 쫓기는 건지
어떤 일로 도망 다니는지도 모르는 채
신호등도 보이지 않는 길을 헤매고 있다
밤낮으로 앞을 가리는 저 자욱한 먼지는 분명히
그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그들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허파꽈리 속에 가득 찬 먼지를 뱉어내려는 듯
기침소리, 기침소리
얼굴은 보이지 않아도
아직은 서로가 곁에 있다
짙은 먼지 속에도
일교차로 만든 집
꽁꽁 얼려 두었어요
언제 창문을 열 수 있을지
어떤 허기가 찾아올지 모르거든요
달 없는 밤에 홀로 깨어
눈 뜬 채 얼어 있는 고등어와
눈을 맞추는 일
지느러미를 쓰다듬어 보는 건 어떨까요
출렁이는 물결에 자맥질하던 시절
아직도 잊지 못했나요
사랑이 올 때와 떠나갈 때의
지독한 수온 차
그건 얼어붙은 갈치 은비늘 속에도 새겨져 있을 걸요
영하 20도로 얼어 있다가도
고춧가루 벌겋게 뒤집어쓰고 냄비 속에서
펄펄 끓는 건 시간문제이지요
조각난 무를 부둥켜안고 흐물흐물 풀어지는 몸
열탕도 냉탕처럼 예고 없이 찾아오는 거랍니다
포근한 솜이불에 파묻힌 당신
이따금 시리도록 흐느끼는 건
지느러미 찢긴 채 갑판 위에서 냉동고로 끌려가던 그날
그 악몽에 다시금 등이 얼어붙는 중인가요
함께 잠들어도 홀로 눈 뜨는 밤
홀로 냉동고로 끌려가는 밤
지독한 일교차에 이불을 목까지 끌어 덮는
새벽이면 이어지는 마른기침 소리
어떻씨와 함께하는 11월 저녁
너와 악수하면 석고로 만든 손가락 하나
뚝 부러져 나온다
포옹할 땐 지푸라기 어깨
부실부실 짚 먼지가 떨어져 나오고
목덜미엔 칼이 꽂혀 있다
쇳조각을 이어 붙인 심장은
나의 체온에 따라 뜨거웠다 식었다 한다
멀리서 보면 너의 표정은 대체로 온화하다
잘 다려진 양복을 입고
이따금 고급 모자도 썼다 벗었다 한다
오늘은 어떤 코를 붙이고 서 있을까
쇼윈도를 들여다보며
더 슬퍼 보이는 한쪽 눈을 닦아 끼곤 하겠지
처진 왼쪽 입술을 당겨 올리면서
네 목덜미에 꽂힌 칼끝이 삐죽이 나와
내 이마를 찌른다
피 흘리며 몰두하는 포옹 속에
피가 빠져나가는 만큼 나도 지푸라기 몸이 된다
젖은 눈을 얼른 빼서 주머니에 넣는다
밖에는 비가 오나요
누가 보낸 꽃일까
무슨 일로 사람들 모여든 걸까
내 영혼은 어리둥절 영안실 복도를 서성거리고
밖에는 비가 오는지
막 벌어지던 꽃망울이 떨어지고
달려가던 트럭이 미끄러지고
유리창이 화염병처럼 깨지기도 하겠지
애인에게 갑작스런 이별을 통보 받은 남자가
빈소의 편육 접시를 뒤적거릴 때
그가 내뿜는 담배 연기가 허공 속에
동그라미가 되었다가 표정들을 천천히 지울 때
죽은 새의 부리처럼 검은 보랏빛
땅속에 나는 백 년쯤 더 누워 있을 거야
입술이 지워지고 귀에서 떡잎이 돋을 때
밖에는 수만 번 비가 내리고
어디선가 또 풋과일이 떨어지고
새들은 내 가슴이 있던 자리를 종종거리겠지
꽃바구니를 들고 지하계단을 막 오르려던
물방울 원피스의 여인이 우산을 접는 행인에게 묻겠지
밖에는 비가 오나요?
—시집『일교차로 만든 집』(2014)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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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채원 / 서울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1996년《문학사상》을 통해 등단. 시집『나의 키로 건너는 강』『슬픈 갈릴레이의 마을』『일교차로 만든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