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시집 일교차로 만든집

시집 해설/암흑의 타자 또는 에로스의 덩어리/황현산(문학평론가)

Beyond 정채원 2021. 11. 8. 14:16

황현산 문학평론가, 시집해설.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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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의 타자 또는 에로스의 덩어리

 

황 현 산

 

바닷가에 조가비가 널려 있다. 한 아이가 그 조가비를 줍고 있다. 아이는 가능한 한 아름다운 조개껍질을 고른다. 모양이 여느 조개껍질과 닮지 않은 것, 색깔이 좀 더 다채로운 것, 파도에 부서지고 닳아 작고 하얀 바둑알처럼 보이는 것, 아이는 조금 다른 조가비를 고르려 하는데, 문득 어떤 조개껍질도 다른 조개껍질과 같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다른 조개껍질과 똑같은 조개껍질은 없다. 조개껍질은 저마다 특별하다. 아이는 손에 들고 있던 조가비들을 버리고 망연히 서 있다. 그는 조개껍질들을 분류할 수도 없고 선택할 수도 없다. 조개껍질 하나하나가 그에게 뚫고 들어갈 수 없는 장막이 되었고, 건널 수 없는 심연이 되었다. 철학자 아이는 산과 바다와 하늘을 바라보았다. 나무와 돌과 파도와 구름이 모두 심연이다. 사물은 심연이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저들 사물 앞에서 깊은 외로움과 공포를 느꼈다.

저 아이의 경험은 정채원의 경험이기도 할 것이다. 사물은 심연이며, 그것은 늘 압도적인 권력을 지니고 있다. 그와 사물은 같은 힘으로 맞서지 않는다. 사물은 사물인 그대로 불투명하게 거기 있고, 인간은 제가 안다고 생각하는 사물들의 벽 앞에 눈먼 자처럼 서 있다. 정채원의 시에서 사물은 자주 은유의 힘을 얻지만 그것은 사물이 시인과 깊이 소통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사물의 드러난 얼굴이 뚫고 들어갈 수 없는 장막으로 시인을 억압하기 때문이다. 시인은 어떻씨와 함께 하는 11월 저녁의 첫 두 연을 다음과 같이 쓴다.

 

너와 악수하면 석고로 만든 손가락 하나

뚝 부러져 나온다

 

포옹할 땐 지푸라기 어깨

부실부실 짚 먼지가 떨어져 나오고

목덜미엔 칼이 꽂혀 있다

쇳조각을 이어붙인 심장은

나의 체온에 따라 뜨거웠다 식었다 한다

 

제목 속의 어떻씨는 물론 쇼윈도의 마네킹이다. 사물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그 심장은 날카로운 금속이다. 제 온기가 없는 그 사물은 시인이 그 속에 침투하려는 여러 시도의 성질, 즉 열정의 온도를 반영할 뿐이다. 형용사의 다른 말인 어떻씨마네킹은 아마도 시인과 특별한 관계에 있는 어떤 사람을 은유할 가능성이 크지만, 시적 상상력이 성립되는 과정을 성찰한다면, 시인이 그 관계를 말하기 위해 마네킹을 끌어왔다기보다는 그 무정한 괴뢰와의 만남이 무어라고 형용할 수 없는 한 인간을 생각하게 했다고 말하는 편이 옳다. 아무튼 시인은 그 괴뢰와의 접촉에서 체온을 소비하기만 하였다고 할 수는 없다. 적어도 시인은 자기 체온의 효과를 시험하였다. 어디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자신이 무엇이며, 자신에게 무엇이 있는가를 아는 일인데, 그도 역시 저 바닷가의 아이처럼 제가 만나는 사물 앞에서 깊은 외로움과 공포를 느낀다.

이 외로움과 공포는 어떤 특별한 존재를, 이를 테면 시 안개표범벌레안개표범벌레같은 상상동물을 발명하게 한다. 이 벌레는 덜 익힌 안개표범 고기를 통해인간의 체내로 들어와 대개 망상소화기관에 머물며 불면과 체중 감소를일으키며, 알은 꿈길로 스며들어 혈관을 타고온몸으로 돌아다니는데, 벌레가 뇌로 침투하면그 결과는 아름답기도 하고 끔찍하기도 하다.

 

이 별의 모든 나무들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고, 잎사귀를 만질 때마다 손가락이 떨어져나간다고 한다 얼어붙은 땅속에서 꽃의 노래가 들려오고 몇 달씩 짙은 안개 속에 한 발짝도 떼지 못한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언젠가 자기가 떠나온 그 별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을 조절할 능력이 급격히 감소한다고, 안개표범과 마주치면 재빨리 피하든지 아니면 때려잡더라도 고기를 충분히 익혀 먹어야 한다고 의학자들은 경고했다

 

-「안개표범벌레」부분

 

 

안개표범벌레의 감염자는 필경 시인일 것이다. 시인은 이 별의 나무들이 속삭이는 소리를 듣는 특별한 감각을 지니지만, 그 대가로 제 육체가 피폐해지는 것을 견뎌내야 하고, 제 별로 돌아가는 일, 다시 말해서 일상의 삶을 포기해야 한다. 그래서 묻게 된다. “이 별의 모든 나무들이 속삭이는 소리는 실상 밖에서부터 들려오는 소리가 아니라 그의 육체가 허물어지고 그 삶이 무너지는 소리가 아니었을까. 아니 그보다는 더 낫게 말해야 한다. 나뭇잎들의 속삭임과 같은 속삭임이 그의 육체 안에 이미 내장되어 있었으며, 하나의 삶을 무너뜨리고 또 하나의 삶을 넘어다 볼 때만 그 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진정한 소통이라고 불러야 할 것은 제 존재의 어떤 율조가 그 육체의 격벽을 넘어서서 삼라만상의 율조와 같은 것이 될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라고.

시인으로서 정채원은 자신의 생명 안에서 다른 생명, 자신의 존재 안에서 다른 존재를 끌어내는 능력이 자기에게 있는 것을 안다. 그는 늘 한 사람이 아니며, 그 현상은 거의 그의 운명이다. 분열의 역사에 의하면, “동지 그믐달이 그를 낳았고, “말복 태양이 그를 키웠다. 그래서 낯선 두 여자가 샴쌍둥이처럼 등을 맞대고 킬킬거리, “태양이 달을 꿀꺽 삼키는 그날을 위해/달은 매일 동쪽 방향으로 13도씩 이동한다. 우로보로스에서는, 여러 공간이 하나의 시간에 겹치고, 또는 다른 시간이 동일한 공간에서 흘러가며, 그는 여러 시공에서 한 존재로, 또는 단일한 시공에서 자주 얼굴이 바뀌는 자신을 발견한다. 말의 음조와 서술되는 내용이 미묘하게 어울려 있는 시의 후반부를 좀 길게 인용한다.

 

방은 하나뿐이라는데 낯선 방은 자꾸만 열리고

먼지바람 날리는 붉은 별에서 뱀처럼 바닥을 기었다

어둠 속에 소리쳐 다른 생명체를 찾았다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밤안개가 입김처럼 가슴을 덮었다

수많은 뒤통수가 떡 버티고 선 어둠속으로 검은 물체가

날개를 퍼덕이며 내 어깨를 사납게 치며 사라져갔다

돌아서지 않는 얼굴, 문득 잠 깨면 너와 내가 바뀌어버린 얼굴

잠속의 잠으로 꿈속의 꿈으로 방은 끝없이 이어지고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옮기는 사이 서로를 잊었고

다른 방에서 마주쳐도 화살자국을 알아보지 못했다

화살을 쏜 자도 화살을 맞은 자도 그 누구도

 

- 「우로보로스」 부분

 

 

그는 화살을 쏜 자인 동시에 화살을 맞는 자이다. 비극적이기보다는 서정적인 이 다중인격 롤플레잉은, 시의 제목인 우로보로스곧 제 꼬리를 물고 도는 뱀으로 암시되듯, 끝없는 시간의 순환 속에 간헐천처럼 솟구쳐 오르는 기억들의 몽환극으로 이해되어야 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 배역과 행위양식을 창출해내는 시인의 이상한 능력이다. 아마도 사람들은 전생과 윤회를 이야기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생의 기억을 쌓아두는, 그것을 다시 이 삶의 이력 속에 배치하는 기제는 무엇일까. 시를 몇 편 더 읽자.

하지불안증후군에는 핏줄 속을 뛰어다니는 얼굴들이 있다. 그 미세 존재들은 저마다 한쪽 다리가 불편하거나 스스로 한쪽 발에 상처를 내어 하지불안증후군을 앓고 있다. “전류처럼혈관을 타고 돌아다니는 그것들은 모자를 쓰고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었을 뿐만 아니라, 석고붕대 위로개미들이 기어 다닌다.” 하지불안증후군에 시달리는 한 인간 주체가 있고, 그의 혈관에는 수많은 하지증후군 미세 주체가 있으며, 또한 그 미세 주체에게는 또 다른 미세 주체가 있다. 동형반복의 이 미세 주체들은 큰 주체를 그 세포 수준에서 복제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캄캄한 비문처럼 뭉쳤다가 흩어진다.” 그의 하지불안증후군은 그가 해독해야 할 문자들이며, 암흑의 형상을 지닌 시의 덩어리이다. 그것들은 “4분에 한 번씩발동을 하고, “4층에서 뛰어내린다.” 그리고는 끝내 “4초에 한 번씩신호를 보낸다. 시에서 “4”는 말할 것도 없이 죽음의 기호다. 그의 다중인격은 미세 세계의 계단을 따라 다층을 이루고 죽음의 성질을 띤 시의 덩어리가 되어 그의 내부에서 준동하고 있다.

젖은 손바닥에서는, 비를 피해 아가위나무 회갈색 둥치에 기대어서 있던 그의 손바닥에서 집 한 채가 태어난다. 집은 황폐한 상태다. 창문이 깨어져 황사바람이 들락거리고, 전화기에는 전선이 끊어졌으며, 화분의 선인장에는 가시가 만발하였다. “책상엔 읽다만 책이 한 권 펼쳐져 있다는 진술은 이 내면풍경의 황량함을 한 번 더 강조할 뿐만 아니라, 이 시 전체가 시 쓰기의 알레고리임을 말해준다. 그러나 그 풍경이 황량하다고 해서 그의 시 쓰기가 황량하다는 뜻은 아니다. 시는 일상의 삶이 파괴되었거나, 무가치한 것으로 인식될 때 태어난다. “젖은 손바닥에서 태어나는 집이 풍요로워야 할 그의 시라고 하더라고, 그 풍요보다 먼저 그 상상력이 성립되는 방식을 기념한다.

 

바람이 애써 책장을 넘기고

끊어진 전선 위에 나비가 앉았다 날아가는 날에도

의미심장한 고유명사 하나

속삭여 주지 않았다, 갈색 점무늬 번져가는 나무 아래

어쩌다 마른번개나 장대비가 예고 없이

내 손바닥을 적시고 지나갔다

 

- 「젖은 손바닥」 부분

 

 

 

고유명사는 누구의 이름이기보다 우연으로부터 벗어난 말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시인은 우연하게 제 것이 된 삶을 벗어나서, 제 안식처이지만 또한 제 굴레인 우연한 제 울타리를 벗어나서, 우연한 감정과 우연한 말들을 벗어나서 처음부터 거기 있어야 할 말로 새로운 거처를 짓고 싶다. 그러나 우선 만나게 되는 것은 예고 없이찾아오는 마른번개나 장대비일 뿐이다. 더 철저한 폐허가 필요하다는 뜻이겠다. 고유명사이건 다른 말이건, 말은 이 폐허의 밑바닥에서 솟아오를 것이다.

존재의 밑바닥에서, 또는 주체에 억압받고 엄폐되어 있는 시의 덩어리로부터 말을 끌어올리기 위한 이 폐허의 장치가 자주 죽음에 대한 공포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공무도하에서는 저 하지불안증후군에서 암시적으로만 나타났던 죽음이 하나의 인격을 형성한다. “가는귀먹은 귀에 검은 이어폰을꽂은, 다시 말해서 누구의 말도 들으려 하지 않는 한 여인이 길을 간다. 그는 횡단보도를 건너가고, “오뎅국물과 소주잔을 건너가고, “얼얼한 목구멍으로 언 별을 잔뜩삼킨 채, “동짓달 그믐밤을건너가고, “은하수를 건너 건너”, 힘겹게 아침에 당도한다. “주머니에 돌멩이를 가득 채운 채여자는 강을 건너간다.” 여자는 죽음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시인은 한 줄을 떼고 마지막 구절을 적는다.

 

그대, 나를 건너지 마오

 

- 「공무도하記 」부분

 

 

 

여자는 죽으러 가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죽음의 신이다. 그러나 이 두 겹의 비유체계를 전복해서 읽는다면, 시인은 또한 강이다. 그의 내면에서 흘러가는 것은 죽음의 언어다. 그러나 죽음의 언어는 죽은 언어가 아니다. 그것은 생명을 잃은 언어가 아니라, 오히려 생명의 모든 활동이 거기서 출발하는 언어, 아직 개념과 의미로 바뀌지 않은 타자의 언어다. 거기서 한 움큼 집어 올리기만 하면 시가 되는 언어다. 아직 이름이 없는 이 에로스의 덩어리, 이 날것의 생명은 시인 정채원이 변검(變臉)’하듯 둘러쓰는 온갖 얼굴의 근거지다.

이 해설을 시작하면서 언급하였던 사물의 심연으로 다시 돌아가면, 그의 사물은, 그 정체를 드러내지 않을 때에도, 저 생명의 변용과 시시로 조응하기에 그 심연의 여러 수면이 시인의 삶 속으로 불식간에 떠올라 낯선 언어를 촉구하는 힘을 발휘한다. 그에 대한 가장 적절한 설명을 아마도 시 짝눈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짝눈은 어쩌면 시인의 신체적 조건일지 모른다. 서로 다른 시력을 지닌 좌우의 두 눈이 보는 세상은 늘 한 쪽이 더 무겁기에 다른 한쪽이 매달려도 주르륵 미끄러진다.” 세상은 그 시소 타기 사이에서 풍경을 형성하고, 시인의 의식에서는 한 세계 위에 다른 세계가 겹친다. 그가 직시하려는 특별한 대상은 자전거가, 새가, 청년이 되었다가, 끝내는 그의 배경이 되려 한다.” 그 어른거리는 배경에 그는 붙잡혀 있다. 흔들리는 배경 속에 꽃이 핀다”, 다시 말해서 그 불안정한 시야를 통해 불투명한 외면의 사물과 기민하게 웅성거리는 시인의 내면이 일상의 언어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조응관계를 형성한다. 자기 안의 타자에 친숙한 정채원은 마음먹을 때마다 한 세상을 타자들의 세상으로 바꿀 줄 안다.

낯선 공간에서 낯설게 돌출하는 하나 이상의 공간들, 그 공간들이 이어 붙거나 겹쳐지는 복합적 거주지들, 한 삶에서 다른 삶으로 이음매 없이 건너가는 기이한 시간여행, 다른 존재를 중층적으로 끌어안고 또다시 다른 존재를 향해 계단을 밟고 올라서는 다중인격 존재는 정채원의 시 어디서나 만나게 되는 주제이다. 정채원은 여러 개의 자아를 안고 산다. 아니, 다중인격이나 복수의 자아라는 말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정채원에게는 지극히 능동적인 에로스가 있다. 이 타자의 덩어리는 늘 풍경 하나를 형성하며 그때마다 다른 얼굴을 들고 출몰할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말을 펼쳐 들었다가 그 미로 속으로 사라진다. 정채원의 시는 말이 곧 에로스인 것을 지극히 선명하게 보여준다.

 

 

黃鉉産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저서 : 󰡔얼굴 없는 희망󰡕, 󰡔말과 시간의 깊이󰡕, 󰡔잘 표현된 불행󰡕, 󰡔밤이 선생이다󰡕. 역서 : 디드로의 󰡔라모의 조카󰡕, 말라르메의 󰡔시집󰡕, 아폴리네르의 󰡔알코올󰡕, 발터 벤야민의 󰡔보들레르의 작품에 나타난 제2제정기의 파리󰡕(공역),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