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네 번째 서랍
로비에서 보기로 했다/이수명
Beyond 정채원
2021. 11. 17. 21:00
로비에서 보기로 했다
이수명
로비에서 보기로 했다.
둥글게 휘어진 로비
먼저 와서 기다린다.
그가 도착하면 따라 나서야 한다.
잠자코 따라가면 된다고 들었다.
실시간 앞을 보고
뒤를 돌아본다.
작업복 차림의 남자 둘이 손에 밧줄을 들고 지나간다.
구석에는 전시용 수족관이 있다. 물고기는 없고
수족관 안에 병이 가득 들어 있다. 플라스틱병과 유리병과 고무병과
가죽병과 알록달록한 색깔이 있는 병과
그냥 검은 병과 뚜껑이 있는 병과 뚜껑이 없는 병과 크고 작은 병이 아직
깨지지 않은 병과 깨진 병들이 있다. 입을 벌리고 있는 병과 거꾸로 박힌
병이 있다.
남자 둘이 다시 돌아온다. 밧줄을 사방으로 늘어놓았다가 둘이 양 끝을
잡았다가 둥글게 감는다. 이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완전하게 되풀이한다.
그는 아직 오지 않는다. 이 부근에서 헤매는 건 아닌가 오다가 마음이
바뀌어 돌아간 것은 아닌가 들어오지는 않고 이 크고 환한 건물 앞에 갑자기
못 박힌 듯 서 있는 것은 아닌가
병들은 빛난다. 물속에서 병들은 무슨 소리를 낸다. 나는 잘 알아듣지 못한다.
윙ㅡ하는 소리를 휘파람 소리를 박수를 치는 것 같은 소리를 웅얼거리는 소리를
되는대로 그러나 이윽고 조용해지고 병들은 모두 입을 벌린 채
그냥 어른거리기만 한다.
《상징학 연구소》 2021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