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깊은 곳을 울리는 예표豫表의 시/김종회
|작가 연구 | 강인한 작품론 |
영혼의 깊은 곳을 울리는 예표豫表의 시
― 강인한의 시 몇 편, 새롭게 읽기
김종회
1. ‘언어의 보석’에 몰입한 반세기 세월
시인 강인한姜寅翰은 1944년 전북 정읍 출생이다. 본명은 동길東吉. 전주고등학교 문예반에서 신석정 선생을 만났고, 전북대 국문과를 거치며 시인의 길을 예비했다. <전북일보>와 <동아일보> 신춘문예의 ‘해프닝’을 감당한 후, 공식적인 데뷔는 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의 시 「대운동회 만세소리」 당선이었다. 그런데 그 한 해 전 1966년 첫 시집 『이상기후』를 상재했으니, 이미 시를 쓰며 사는 생애를 약속했던 셈이다. 그런가 하면 박인희가 부른 「하얀 조가비」, 영 사운드의 「등불」 등의 작사가이기도 한 터이니 그의 어록으로 소통되고 있는 ‘언어의 보석’이 어떤 모형으로든 지근至近 거리에 있었다 할 것이다. 시인 자신으로서는 사뭇 행복한 삶의 행보行步다.
지금껏 그는 모두 11권의 시집을 내놓았다. 두 권의 시선집과 한 권의 비평집도 있다. 56년 문학 인생에 그 분량이면 다작多作도 과작寡作도 아니다. 격동기의 현대사를 살아오면서 그는 꼭 써야 할 만큼의 시를 생산한, 자기 관리와 절제에 익숙한 시인으로 보인다. 시작詩作에 있어서의 이와 같은 균형감각은, 기실 태만이나 남발보다 더 어려운 일이 아닐까. 물론 더 중요한 것은 그 시의 미학적 수준이요 가치다. 그에 대한 논의를 잠시 미루어 두고 보면, 그에게 주어진 전남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시와시학상, 전봉건문학상 등이 객관적인 참고자료가 된다. 2002년부터 그가 운영해 온 인터넷 시문학 카페 ‘푸른 시의 방’은, 그가 시와 더불어 세상을 만나는 뜻 깊은 통로가 아닐까.
필자의 시각으로 강인한의 시 세계는 크게 두 가지 성향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그의 태생적 언어 감각이 촉발한 문학적 순수성과 서정성의 세계. 이는 지난 6월 ‘문예바다’가 기획 출간한 서정시선집 『당신의 연애는 몇 시인가요』가 확고한 증빙이다. 시인은 여기에 첫 시집 『이상기후』에서 열한 번째 시집 『두 개의 인상』까지의 전체적인 작품 속에서, 서정성이 강한 54편의 시를 한데 묶었다. 다른 하나는 시대적 현실을 시적 암시와 더불어 강고하게 드러내는 사실성의 세계. 이 대목의 바탕에는 아마도 1980년의 ‘광주’를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들은 체험의 역사성이 개재해 있을 것이다. 1982년에 나온 제3시집 『전라도 시인』에서부터 1992년의 제5시집 『칼레의 시민들』까지를 일별해 보면, 쉽사리 이를 납득할 수 있다.
어느 시인인들 시적 서정성과 현실 인식의 사실성을 함께 포괄하지 않으랴마는, 강인한에 있어 그것은 ‘천생天生의 시인’이라는 충분조건과 ‘통한의 체험’이라는 필요조건이 직조물의 씨줄과 날줄처럼 교직된 시인으로서의 운명이 아니었을까. 이 글은 강인한 시의 총체적 면모를 말하는 소임을 갖고 있지 않으며, 그의 근작 시 5편과 신작 시 3편에 대한 작품론을 수행하는 것으로 역할이 정해져 있다. 그러나 그에 제대로 부응하자면 시인의 세계를 충실하게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만 그러하기에는 주어진 시일이 촉박하여, 여기에서는 위태롭게도 앞서 살펴본 대강의 범주를 유념하며 8편의 시를 검토할 수밖에 없다. 이제껏 이 시인이 산출한 풍요로운 수확의 면모를, 보다 체계적으로 살펴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2. 역사와 현실의 질곡을 넘어선 희망
강인한의 근작 시 다섯 편은 동서고금의 지구별 여러 곳을 무대로, 주어진 현실에 대해 비판적 의식을 가진 자들의 맨얼굴을 보여 준다. 「파리를 방문한 람세스 2세」는 그러한 형국을 강력하게 제기하는 인상 깊은 시다. 제목의 어투는 꼭 국가원수의 국빈 방문 분위기다. 실제로 그렇다. 시인의 기록에 의하면, “파라오 람세스 미라의 방부 처리 문제로 미라를 프랑스로 이송하여 파리공항에 도착했을 때, 프랑스 정부가 국가원수에 준하는 의식으로 그 앞에서 사열을 했다”는 것이 아닌가. 과거의 문화 약탈자가 오늘에 이르러 최상의 의전을 베푸는 상황이, 그래도 ‘감동의 전율’을 불러온다. 시인의 깨어 있는 눈은 이 까마득한 세월을 뛰어넘는 이율배반적인 ‘방문’을 매우 엄중하게 바라본다.
삼천 년도 훨씬 지나
이제야 나는 바코드라는 지문을 가진다.
모래와 바람과 강물처럼 흘러간 시간이었다.
넌출지는 시간의 부침 속에
스쳐 가는 존재들,
(중략)
한 나라의 역사란
파피루스의 희미한 글자들
바스러지는 좀벌레들에 지나지 않으리
날마다 피를 정화하는 히비스커스 꽃차를 마셔도
추악한 것을 어찌 다 씻어서 맑히랴
콩코르드 광장에 우뚝 선 오벨리스크
저것은 일찍이
테베의 신전 오른편에 세운 것이었다.
― 「파리를 방문한 람세스」 부분
미라가 되어 방부 처리를 위해 파리공항에 내린 람세스 2세가 화자다. 아무리 팡파르가 울리고 의장대의 사열이 훌륭해도, 삼천 년 전 망국의 파라오는 수긍하지 않는다. 그는 ‘전쟁에 이겨야만 남의 나라를 정복할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말하며, ‘불타 버린 심장’으로 ‘오벨리스크의 침묵’을 예거한다. 장구한 역사적 사실史實과 목전의 현실적 사건을 하나의 꿰미로 엮어낸 절창의 시다. 거기에 시공을 초월하고 또 통합하여 바라보는 시인의 예지가 빛난다. 「배낭을 지고 아고라로 가는 사람들」 또한 이러한 시인의 역사 인식과 그다지 먼 거리에 있지 않다. 익히 아는 바와 마찬가지로, ‘아고라’는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에 있던 광장이며, 물리적인 장소만이 아니라 모임 자체를 의미하기도 했다.
우리들의 내부에서
녹슨 태양이 출렁이는 아침
우리들의 과거는 검푸른 이오니아의 바다
학교에서 바라본 금환일식, 금테 두른 태양
혹은 노래도 꽃도 없는, 진실이 없는
신문지.
모두들 헤어져 간 소년들의 운동장에서,
은밀한 숲 속 산책로에서
발길에 차이는 마스크, 마스크, 마스크……
가위눌린 꿈속,
떠나간 친구들의 엉뚱한 변모
집배원의 피곤한 손에서 반려되는 우리들의 안부.
― 「배낭을 짊어지고 아고라로 가는 사람들」 부분
이 시에서 아고라는 물론 고대도시의 광장이 아니다. 시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모임도 BC 5세기 ‘그리스인들의 정치·재판·상업·사교·종교 활동을 모방하고 있지 않다. 시인은 다만 매일같이 마주하는 우리 삶의 퇴락한 일상 그리고 정치 집회를 위해 나서는 사람들을 보면서 탄식을 감추지 않는다. 2,500년의 상거相距를 가진 지구 반대편의 풍경을 지금 여기에 반사해 보는 시인의 속내는 심란하고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그것은 또 하나의 비판정신이다. 바로 그 반사경의 효력이 복무하는 곳에 이 시의 의미가 있다. 「개가 죽은 자리는 어디인가」는 이 시공을 넘어선 비유법의 방식과는 다른 영역으로, 사람과 개를 대비하는 새로운 비유의 형용을 시의 중심에 둔 작품이다.
여기 어디라는데, 모질고 사나운
개가 개에게 물려 죽은 자리,
이 동네 어디쯤일까
흔적도 없네.
늙은 내외가 도란도란
공원 벤치에 앉아 바라보는 하늘 저만큼
고추잠자리 떼 지어 날고,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건네주는
따뜻한 보리차 한 잔.
― 「개가 죽은 자리는 어디인가」 부분
이 시에 등장하는 두 종류의 개, 물고 물린 개의 모질고 사나운 정황을 병정놀이하는 아이들은 모른다. 그러나 시인은 이 시의 행간에 그 사나움보다 더 세력이 있는 따뜻한 눈길을 묻어 두고 있다. 이러한 지점이야말로, 시인이 세상에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는 증표다. 늙은 내외가 나누는 따뜻한 보리차 한 잔 또한 그렇다. 「밤새 안녕들 하신가요」에서는 목하 온 세계를 휩쓸고 있는 ‘COVID-19’를 제재로, 그야말로 온 세계의 사설을 펼쳐 보인다. 그 소리 가락 같은 문면文面 가운데는 ‘야훼와 알라가 머리 맞대고’ 문제를 풀어 본다는 서술도 있다. 또 다른 시 「지붕 위의 황소들」에서도 우화적 분위기 속에서 활달한 현실 탈출의 의지를 볼 수 있다. 그의 시가 우울한 시대 현실의 늪으로 침윤하지 않고, 세상살이의 기력을 새롭게 섭생하는 이유다.
3. 순정한 서정, 소탈한 자기성찰의 시
강인한의 신작 시 3편은 서정적 시어들의 각축으로, 또 그로 인한 시적 감응의 충일함으로 읽는 이의 공명共鳴을 촉발한다. 마치 여기 한 곳에 응결하기 위하여 작정하고 지은 듯. 이 시들을 반복하여 읽으면서 필자는, 서정성과 사실성의 두 축을 세워 그의 시를 탐색해 보겠다는 생각의 향방이 시의 실상과 어긋난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견우牽牛」는 순정한 감성과 애잔한 사랑으로 넘치는 시다. 시의 화자가 ‘견우’이면 그 상대역 ‘아기씨’는 ‘직녀織女’라 호명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터. 동양 문화권에 널리 유포되어 있는 이 시공 초월의 사랑 이야기는, 일 년에 한 번 만나는 애틋한 그리움의 상징이다. 나라마다 여름 별자리 견우와 직녀성을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내 외로 가는 고운 날에
두어 평 텃밭을 장만하면
거기에 비 내리겠지. 은실 비 내리겠지.
은실 비 맞는 내 꽃모종
수정에 뜨물 부어 새순 기르듯
눈물을 길어 잎을 틔우고, 씨를 얻어 보리.
아기씨 족두리에 꿰인 구슬 알맹이들이
몸 비비며 수줍어하는 밤 이슥한
순금純金의 회오리바람.
불씨 빌려오듯 소중한 금빛
고단한 잠은 깨우지 않고 꽃잠은 깨우지 않고
멀리서 초록 두꺼운 해가림 하며
쉼 없이 보살피리.
― 「견우牽牛」 부분
견우가 풀어 보이는 사랑의 언어들은 맑고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은실 비’가 내리고 ‘순금의 회오리바람’이 일어난다. 그의 시 곳곳에서 목도할 수 있는 이 ‘금빛’은, 시적 정서가 순방향으로 가장 고양된 지점을 가리키는 예표에 해당한다. 견우는 그 아기씨를 보살피는 일에, 아기씨의 ‘은은히 나부끼는 은실 웃음’을 보기 위해, ‘백 년’을 땀 흘리겠다는 언표言表를 내놓는다. “하마 오늘 밤, 이승에서 밝히는 새우잠 속에라도 아기씨 눈썹 적실 비 내리겠지. 은실 비 내리겠지”라고 부연하는 이 시인의 상상력은 한결 부드러우나 가히 우주적 확장을 담보하는 기세다. 거기에 시인의 오랜 문학 경륜과 시적 언어의 조탁彫琢이 결부되어 있기도 하다.
어둠 속에서 문득
한 줄 네 마음의 실이 끊어져 나갔다.
어디선가 꽃 지는 소리, 밤새 소리 하나
들려오지 않았다.
산사나무, 단풍나무, 상수리나무 얼크러진
산 여울의 은빛 비탈을 넘어
머언 둑을 소요하고 있을, 설레고 있을
내 소년의 바람이여.
잃어버리는 것, 잊혀지는 것 애석지 않아
사는 것, 내 사는 것이 호젓하였다.
끊어져 나간 네 마음의 끝 간 데에서
바람은 지금 길눈이 캄캄할 것이다.
어리석은 속단처럼
여기저기 흰 밤별이 떨어졌다.
― 「별이 지는 밤」 전문
이 시는 소탈한 자기 성찰과 정관靜觀의 깨우침을 함께 담았다. 어느 순간 조지훈의 「낙화落花」 또는 이형기의 「낙화」에 잇대어 읽는 느낌을 가져다준다. 시인은 자신의 가슴에 숨겨 둔 ‘내 소년의 바람’을 소환하고, 그로부터 잃고 잊히는 것을 넘어 ‘내 사는 것이 호젓’한 경지까지를 거멀못처럼 함께 묶어낸다. 흔히 볼 수 있는 만만한 각성覺醒의 단계가 아니다. ‘꽃 지는 소리, 밤새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별이 지는 밤’의 일이다. 그 어둠 속에서 문득 ‘한 줄 네 마음의 실’이 끊어져 나가고, 시인의 심사는 그 각성이 앞서의 금빛 도색과는 현저히 다르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거기에는 ‘어리석은 속단’에 대한 경계도 포괄되어 있다.
유리성城의 뜨락에는
유리의 햇살이 찰찰 부서지고,
까만 눈썹
사과 빛 뺨이 언제나 수줍은
네덜란드 소녀.
― 「풍경을 애완하다」 부분
왜 여기에 다시 ‘네덜란드 소녀’인가. 이 글의 서두에서 검색한 바와 마찬가지로 수천 년의 시·공간을 자유롭게 왕래하는 시인의 상상력, 그 외연의 너비에 비하면 이는 그저 하나 마나 한 우문愚問에 그칠 뿐이다. 그러나 시인은 일찍이 윌리엄 블레이크가 말한바, 한 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는 자다. 소녀의 ‘먼 고향 하늘엔 풍차가 도는데’ 소녀의 눈망울에는 ‘파란 봄’이 어린다. 이 사소하지만 소중한 관찰의 눈과 그 감각은 이 시인이 소박하고 조촐하고 품위 있는 인도주의자임을 증빙한다. 이러한 시적 행렬의 선두에 서 있는 한, 그의 말과 글은 영혼의 깊은 곳을 울리는 예언자의 몫을 다할 것이다. 참으로 산뜻한 시 몇 편을 흔연한 마음으로 읽은 후감이다.
김종회 | 1988년 『문학사상』으로 문학평론가 등단. 평론집 『문학의 거울과 저울』 『영혼의 숨겨진 보화』, 저서 『한민족 디아스포라 문학』,
산문집 『삶과 문학의 경계를 걷다』. 김환태평론문학상, 김달진문학상, 편운문학상, 유심작품상 등 수상. 현재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 촌장.
⸻계간 《문예바다》 2021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