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에세이
서안나의 「분홍의 서사」 / 문태준
Beyond 정채원
2023. 3. 30. 09:21
서안나의 「분홍의 서사」 감상 / 문태준
분홍의 서사 서안나 분홍 속엔 분홍이 없다 흰색이 멀리 뻗은 손과 빨강이 내민 손 나와 당신이 정원에서 늙은 정원사처럼 차츰 눈이 어두워지는 사라지는 우리는 분홍 ...................................................................................................................................... 흰색과 빨간색을 혼합하면 분홍색이 된다. 그러나 뒤섞어서 만들어낸 색채가 이 시가 말하려는, 의미심장한 궁극의 뜻은 아닐 테다. 그보다는 하나의 주체가 지닌 색채가 흐릿해지고 또는 변해간다는 것, 마치 넝쿨이 자라 뻗어가며 어딘가로 나아가듯이 그렇게 진행된다는 것을 시인은 아마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나아가는 쪽은 “눈이 어두워지”고 “사라지는” 방향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주체와 주체 사이에서의 교유도 마찬가지일 테다. 각각의 테두리를 지우고 무너뜨리게 된다. 마치 기슭의 흙이 아래로 흘러내리는 것처럼. 서안나 시인은 시 ‘모래의 시간’에서 “당신이 무너져 모래가 되고 모래가 무너져 공터가 되는 이치입니다// 지워지는 상심은 아름답습니다 모래는 나를 붙잡는 손입니다 전생에 가깝습니다”라고 썼다. 이 모래를 색채에 견주자면 아마도 ‘분홍’이라고 일컬을 수 있을 것이다. 문태준(시인, 불교방송 P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