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유원의 「음소거된 사진」/김영삼(문학평론가)
음소거된 사진
황유원
이 사진은 음소거되었다
밖에서 개들이 미친 듯이 짖어대고 있지만
들리지 않는다
두 명의 사제가 천개(天蓋) 아래 담요를 덮고
곤히 잠들어 있을 뿐
그 옆에 개 한 마리 몸을 말고
함께 잠들어 있을 뿐
발전기의 소음 들리지 않는다
풀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아
바람은 한 찰나에 멈춰 있어
더 이상 불지 않는다
굳어버린 깃발은 바람이 어떤 온도로 불어오고 있는지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사원의 종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맞은편 건물 옥상 리버뷰 레스토랑의 푸른 불빛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 사진은 이 모든 것 그 이상을 말해준다
수면은 얼어붙은 듯 잠잠하고
그 위에 묶인 배들의 고요
나는 이 사진을 아직 찍지 않았다
시집 《초자연적 3D 프린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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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는 제목이 모든 의미를 함축한다. 사진에 담긴 세계는 모든 음이 소거된 상태다. 이어폰을 빼버리자 새로운 풍경이 보였다는 김준현의 진술과 나란히 놓고 본다. 그리고 '사실 우주도 묵음 아닌가'라고 웅얼거려 본다. 사진에도 소리가 저장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진은 이 모든 것 이상"을 담아내는 매력이 있을 터, 하지만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인간의 기술력이 사진의 묵언의 낭만을 거세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도 세계를 프레임 안에 가두려는 재현의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황유원은 이미 이 문제를 알고 있어서 화자는 "이 사진을 아직 찍지 않았다". '아직'이라고 했거니와 보건대 이 부사가 '드디어' 또는 '이제'로 바뀌는 순간은 오지 않을 것 같다. 그는 감각과 언어의 무례함을 이미 알고 있으며, 모든 것이 지워져야 더 큰 것을 담을 수 있다는 사실도 이미 알고 있다. 세계의 모든 소리가 지워지면 거기 우주도 담을 수 있다는 사실도.
김영삼(문학평론가), 《시로 여는 세상》 2023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