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에세이

안차애의 「스키드마크」/임종명

Beyond 정채원 2024. 1. 27. 14:43

스키드마크 / 안차애

 

바람도 없이

모과가 떨어졌다

등짝이 꺼멓게 상한 가을, 모과가

굴러떨어졌다

둥근 몸 위로 가을보다 번개 자국이

먼저 다녀갔다

상처가 불순물처럼 보일까 봐 내부의 뒤꿈치를 들고 있었나

안쪽이 먼저 증발된 무게다

울퉁불퉁한 둘레를 망토처럼 걸치고

내려친 속도 이후의 밤을 견디고 있다

번개 문양이 몸보다 먼저 자라는 사이

상한 밤의 수액이 글썽글썽 맺히고,

마지막 알리바이라도 된다는 듯

주워 올린 손바닥에 남은 모과 향을 쏟아낸다

꺼멓게 밀린 적 있는 밤이

번개의 후일담을 꿀꺽 삼키고,

― 계간 《문학과창작》 2023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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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가을에 바람도 없는데 모과가 나무에서 떨어졌다. 모과의 "둥근 몸 위로" 난, 꺼멓고 번개 자국 같은 상처는 화자에게 흡사 아스팔트 위에서 차량이 급제동하며 남긴 스키드마크처럼 보인다. "울퉁불퉁한" 모과는 땅에 떨어져 생긴 상처를 안고 밤새 견뎌왔다. 그래서 화자는 모과의 상처가 곧 "등짝이 꺼멓게 상한 가을"이고, 거기에 글썽글썽 맺힌 액체는 "상한 밤의 수액"으로 느낀다. "알리바이라도 된다는 듯/ 주워 올린" 화자의 손바닥에서 향긋한 모과 향이 난다. 그렇게 상처에는 시간의 여정과 뒷얘기가 스키드마크처럼 고스란히 남는 법이다. / 숲속의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