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식
너머의 새/강영은 시집
Beyond 정채원
2024. 3. 19. 01:05

너머의 새
새가 날아가는 하늘을
해 뜨는 곳과 해 지는 곳으로 나눕니다.
방향이 틀리면 북쪽과 남쪽을 강조하거나
죽음을 강요하기도 합니다.
나의 흉곽을 새장으로 설득하기도 합니다.
사이에 있는 것은 허공
새가슴을 지닌 허공을 손짓하면
새가 돌아올지 모르지만
새의 노동이
노래를 발견하고 나무를 발명합니다.
헤아릴 수 없는 크기를 가진 숲에
잠깐 머물러
나무와 나무의 그늘을 이해한다 해도
새 발자국에 묻은 피가 없다면
당신이 던진 돌멩이가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점点 하나가
돌에 맞은 공중을 끌고 갑니다.
제가 새라는 걸 모르고
새라고 하자
공중이 조각조각 흩어집니다.
아무런 목적도 계획도 없이
너머로 넘어가는 새
새라고 부르면 새가 될지 모르지만
나라고 발음하는 새는
누구일까요?
시간의 연대
돌 위에 돌을 얹고 그 위에 또 돌을 얹어
궁극으로 치닫는 마음
마음 위에 마음을 얹고 그 위에 또 마음을 얹어
허공으로 치솟는 몸
돌탑은 알고 있었다.
한 발 두 발 디딜 때마다 무너질 걸 알고 있었다.
무너질까 두근거리는 나를 알고 있었다.
그건 내가 태어나기 전의 일이므로
조그만 돌멩이를 주워
마음의 맨 꼭대기에 올려놓았다.
태어나기 전의 돌탑을
태어난 이후에도 기다렸다.
한곳에 머물러 오래 기다렸다.
돌멩이가 자랄 때까지
돌탑이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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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다채로운 시적 물줄기를 하나의 바다로 결집시킨다. 자연물을 대상으로 존재론적 성찰과 초월적 상상력을 전개하기도 하고, 우주와 존재의 근원적 관계성을 탐구하기도 한다. 또, 언어적 매개를 시적 모티프로 삼아 세계와 자아 및 시작(詩作)의 방법론을 제시하면서도 도시적 현실에 대한 냉소적 풍자를 놓치지 않는다. 이러한 다양한 시적 양식들의 충돌과 운집은 강영은 시만의 독특한 미학성을 보여주는 핵심 요소이다. - 오형엽(문학평론가,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