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네 번째 서랍

전파사/권혁웅

Beyond 정채원 2025. 3. 10. 11:03

전파사

권혁웅


아직도 이 땅 곳곳에는 전파사가 있지
전파사는 전파망원경의 자식들
그 앞에서 오래 서성이곤 했다
외계인의 메시지를 수신할까 싶어서
아아, 들리는가 하나 둘 하나 둘
막타워 앞에서, 까마득한 11미터 허공 앞에서
조교는 마지막으로 물었다
애인 있습니까?
없습니까?
오늘 처음 본 사람이 왜 그것을 묻습니까
나는 누구를 기다린 것입니까
올려다본 하늘에는 무수한 전선줄,
나 없이도 그토록 많은 사연이 오가고 있었지
십자로 가로지른 저 선은
환승입니다
이 마을버스는 약국 앞에서 내려요
전파電波는 대체 어떤 물결일까요
빛의 속도로 가닿는 소식을 막기 위해
전파사에서는 자주 저항resister을 고치지
제 손가락을 자를 수 없어서
자기보다 더 그리움을 아는 말을 처단한
김유신이라도 되는 듯
허리 굽힌 풍선인간 앞에서
공손히 맞절하는 아이처럼
나는 간절해요
전파사는 전자파들의 베이스캠프
내 호명은 저 우주를 건너
언제 말머리성운에 가 닿을까요


계간 《문학청춘》 2024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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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웅 / 1967년 충북 충주 출생. 1997년 《문예중앙》 등단. 시집 『마징가 계보학』『소문들』『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세계문학전집』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