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네 번째 서랍
잃어버린 돌에 대한 감각/나희덕
Beyond 정채원
2025. 6. 13. 12:48
잃어버린 돌에 대한 감각
나희덕
사랑을 잃은 손녀가
담낭을 잃은 할머니를 위로하고 있다
흘러내리는 사랑과 담즙을
이제 어디에도 담지 못하게 된 두 사람이
병상에서 서로의 손을 잡고 있다
사랑과 담낭은
꼭 없어도 되는 장기라고
떼내고도 별문제 없이 지내는 사람이 많다고들 하지만
시간은 좀처럼 흘러가지 않고
통증은 불시에 찾아와 몸과 마음을 휘젓고
여자 삼대에게 여러모로 용기가 필요한 겨울이다
담낭 절제수술을 받은 엄마는
자신의 몸에서 나온 담석을 보여달라고 했지만
의사는 검사하러 보냈다고만 했다
우리는 담석을 컴퓨터 화면에서 보았을 뿐이다
작지만 치명적일 수 있는 것,
깨지거나 곪기 쉬운 것,
사라짐으로써 흔적을 남기는 것,
사라진 후에도 복통이나 불면을 유발하는 것
담낭을 떼어낸 다음날 아침
의사는 말했다, 이제
배가 고플 때만 먹고
목이 마를 때만 마시고
잠이 올 때만 자라고
이 말엔 울고 싶을 때만 울라는 뜻도 들어 있겠지
잃어버린 돌은
빈 자리를 통해서만 만져지는 것
걷다가 발길에 툭, 차이는 돌을
자기 몸의 일부처럼 물끄러미 바라보고 서 있듯이
《유심》2025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