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스크랩] 오리찜 먹는 법/황현산

Beyond 정채원 2015. 6. 26. 16:37

오리찜 먹는 법/황현산

 

 

  아라비아의 낙타통구이, 중국의 제비집요리, 인도차이나의 바나나찜, 중학교 때 그 지리 선생님은 음식이야기로 수업을 시작해서 음식 이야기로 수업을 끝마쳤지만 신묘하게 가르칠 것은 다 가르쳤다. 공교롭게도 지리시간이 모두 4교시에 배정되어 있어서 우리들에게 그 음식 이야기는 고통이면서 쾌락이었다.

 

  지구촌 전체를 뒤덮은 그 많은 음식 가운데서도 우리들을 가장 매혹시킨 요리는 만주 어디에선가 먹는다는 오리찜이었다. 1주일을 오리에게 미꾸라지를 먹인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다음 오리를 잡아 털을 뜯고 내장이 있던 자리에 각종 향료를 다져 넣고 완전히 익을 때까지 뜨거운 김을 쏘인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찜 요리와 별로 다를 바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만주 사람들은 이 오리를 긴 장대 끝에 매달아 햇빛과 바람에 말린다는 것이다.

 

  남도 사투리로 '빼득빼득' 해지면, 다시 말해서 겉가죽이 먹기 좋은 곶감 정도로 마르면, 오리를 준비된 삼베자루 속에 넣고, 그것을 자루째 왼손에 쥐고 오른손으로 뜯어 먹는다. 이것이 내 기억으로는 그 지리 선생님이 전해 준 만주 오리찜의 조리법이며 먹는 법이다.

 

 그러나 내내 알 수 없었던 것은 그 삼베 자루다. 왜 오리를 반드시 그 속에 넣어야 하는가.

 

  드디어 오늘 아침, 텔레비전에서, 어느 집 아이들이 수박을 생선회처럼 잘게 썰어 포크로 찍어 먹으며, 혹시 씨라도 하나 입에 들어갈까 봐 두려워하는 것을 보고, 20여 년 동안을 궁금해오던 저 삼베자루의 비밀스런 내막을 문득 깨달았다. 그것은 이 오리 고기를 손으로 직접 뜯어먹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 거친 삼베는 오리 다리를 실수 없이 틀어쥐도록 우리를 도와줄 것이며, 오른손이 미끈거리면 기름기를 씻는 수건 노릇도 할 것이다. 얼마나 황홀한 식사법인가.

 

  '청포도'의 이육사는 풍찬노숙의 독립투사답지 않게 "은쟁반과 하이얀 모시 수건"을 찾으면서도 두 손을 적시기로 결심하였기에 역시 훌륭하다.

 

  축제의 음식을 먹는 자는 마땅히 두 손을 적셔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먹는 음식을 우리와 하나 되게 하는 것이며, 우리가 거둔 곡식과 소채, 우리가 잡은 짐승들에게 속죄하는 길이다.

 

  이런 관점을 강화하다 보면 통조림은 요리가 아니며, 씨를 뺀 참외는 음식이 아니라고 말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떤 강도에서 말하더라도 정장 위에 두른 에이프런은 음식을 소외시키고 결국은 우리를 소외시키는 것이 확실하다.

 

  오리는 내놓고 죽어 우리 손에 있는데 어찌 우리가 옷이 젖는 걸 관계하랴. 어찌 속죄가 없이 행복하랴.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자신이 살해한 생명들과 자기가 먹는 음식 사이에 아무 관계가 없는 것처럼 생각하려는 우리가 두렵다.

 

  옛사람들이 여름날 냇가에 솥을 걸고 끓이는 잡고기 매운탕이나 개장국의 미덕은 무엇보다도 웃옷을 벗고 배를 두드리며 먹는다는 데 있었을 것 같다. 냇가에 솥만 걸면 그것이 곧 잔치이며, 잔치는 두 손과 배로 참여하는 것이다.

 

  희생된 생명들은 거기서 생명이기를 그치지만 그것들과 하나가 되려는 사람들 속에서 어떤 행복의 형식으로 다시 피어난다고 말해도 무정한 말이 아닐 것이다.

 

  책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다. 책은 도끼라고 니체는 말했다. 도끼는 우리를 찍어 넘어뜨린다. 이미 눈앞에 책을 펼쳤으면 그 주위를 돌며 눈치를 보고 있어서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읽는 것에 우리를 다 바쳐야 한다. 그때 넘어진 우리는 새 사람이 되어 일어난다.

 

책이라는 이름의 도끼 앞에 우리를 바치는 것도 하나의 축제다. 몸을 위한 음식도, 정신을 위한 음식도 겉도는 자들에게는 축제를 마련해 주지 않는다.

 

- 황현산, <한국교직원신문>, 2015. 6.22.

출처 : 꽃들*
글쓴이 : 달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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