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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나무 숲에 간다/정한용

Beyond 정채원 2015. 12. 26. 02:38

서어나무 숲에 간다

 

 

정한용

 

 

이쪽이야

건너뛸 수 있겠어?

그럼 거기 그냥 있어.

 

옷깃 새로 칼바람이 스몄다.

돌아보자 그는 숲을 배경으로 정물처럼 멈추었다.

그렇게 그는 서 있다.

 

일설에 의하면

중국 쪽에서 씨앗이 천 리를 날아왔다 한다.

바다 건너 자리잡고 여린 싹을 틔워 숲이 되기까지

또 천년은 족히 견뎌냈을 터이다.

 

거기 뭐가 있어?

여긴 너무 무섭고 이상해,

그만 돌아와.

 

물결 지난 갯벌엔 게들이 써놓은 상형문자

숲의 언어는 예언이며 대화였다.

그리움에 찢어진 내 편지도

이젠 돌아갈 수 없는 불안한 발걸음도 적혀 있다.

 

붉은 해가 순식간에 수평선에 빨려들자

바다가 진저리를 친다.

 

이제 그만 가야 해,

우리

가야 해.

 

 

시집 『거짓말의 탄생』,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