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네 번째 서랍

확장/정영효

Beyond 정채원 2016. 6. 10. 23:16

확장


정영효



구멍 난 사람이 걷고 있었네

아이들이 거기에 손을 넣기도 하고


새가 집을 만들기도 하고 왜 하필 구멍이냐며 궁금해 하는 이도 생겼지만


구멍 난 사람은 구멍으로 충분히 보여준 것 구멍은 알 수 없는 이유를 갖기도 하는 것


묻는 걸 몰랐을 때 벌어지는 입처럼 한쪽이 다른 쪽을 착각하면 캄캄해지는 것임을 그는 말하고 싶었지만


모든 구멍의 표정은 똑같고 그런 표정을 느낄 수 없어서

구멍 난 사람은 걷기만 했네


좁은 골목이 내용이 될 때까지 내용이 곧 사라져버리는 기억이 될 때까지

남김없이 통과하는 바람을 맞으며 남기지 않는 사람이 되는 걸 경험하면서


이대로 향하면 멀리 떨어진 곳 어쩌면 해안 어쩌면 사막

조용한 일들은 무엇으로 흘러가나


앞을 보내고, 앞으로 앞으로 그는 걷기만 했네

가지지 않은 양심과 나타나지 않는 고통


들여다보면 대화가 필요 없는 정원이 펼쳐질 것같이 공중을 매달고 바닥을 키우면서


무너질 줄 모를수록 온갖 마음이 버틸 앞으로 앞으로

구멍 난 사람은 걸어가고 있었네

 



『현대시』2016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