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네 번째 서랍

불멸의 개/이장욱

Beyond 정채원 2016. 6. 11. 13:45

불멸의 개

 

 

이장욱

 

 

막다른 골목인데도 커다란 개가 나타나지 않았다.

나타나지 않은 개는 긴 혀를 내밀지 않았고

이빨을 드러내지도 않았고

이빨에서 흘러내리는 한 줄기 침도

 

나타나지 않은 개와 싸울 수 없었다.

귀를 물어뜯고 피를 흘리고 아가리를 찢고

존재의 끝까지

아주 단순한 마음이 될 때까지

 

그것은 불멸의 개였다.

옆집의 개였다.

개가 아니었다가

거의 진정한 개가 되어서

 

막다른 골목에서 커다란 개가 나타나지 않았다.

나타나지 않은 개가 내 목을 물고

나타나지 않은 개가 꼬리를 치고

 

나는 골목의 어둠 속에 서서

바로 그 개를 바라보았다.

아주 단순한 눈으로

 

 

 

시사사20165-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