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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붙는 돌/김길나

Beyond 정채원 2016. 8. 31. 20:20

 
불붙는 돌
  
  
 김길나

 

 
석수장이가 돌에서 침묵을 빼낸다 돌이 깨진다. 깨진 돌을 던지자 거울이 소리를 질러대고 깨진 얼굴의 파편이 예각을 세웠다 분리된 입술 사이로 깨지는 말들, 말들의 소음이 오늘은 한우생고기집에 마주앉은 너와 나 사이에서 왁자지껄 뭉쳐진다
 
돌에서 침묵폭탄이 터지는 것은, 그러니까 살의 분쇄지 지하드 소년병사의 자폭, 그 우레 속 불의 언어를 꿀꺽 삼켜버린 침묵이 돌 속 골짜기를 지나 만 년 동안의 푸른 메아리를 끌고 돌 밖으로 굴러 나올 때 발밑은 서걱거리는 모래밭이지 흩날리는 뼛가루 백사장이지
 
고고학자가 돌에서 압축된 고독의 연대기를 캐내려 돌들 사이에 서 있다 앗, 뜨거워! 돌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불, 불이 보인 것이야 고독의 분화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침묵이 불붙고 있어 불 샘 깊은 침묵 속 고독이 만 년 동안에 꽃으로 피어난 꽃불을 켜들고 땅 위의 고독들을 끌어들이며 하염없이 너울거리고 있어
 
 
불돌에 곁불을 쬐러 지금 홀로인 사람이 옷자락 나부끼며 터키 올림포스를 향해 가고 있다 신의 언어인 침묵을 엿들으러 시방 어느 집 없는 길의 사람이 길을 서두르고 있다 돌이 불인 야나르타시*는 거기 있다 야나르타시는 오늘 여기 있다 
 
 
*야나르타시: 터키어로 불붙는 돌이라고 함.
  
 

 

시집『시간의 천국』(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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