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네 번째 서랍
삽에 묻은 점자/송승언
Beyond 정채원
2016. 8. 31. 20:27
삽에 묻은 점자
송승언
내가 잠시 살았던 집에서
내가 걸어 나왔다
어제를 잊었듯이
많은 눈이 쏟아졌다
눈과 재
흑백에 젖으며 예배당 문 열자
흔들리는 촛불이 보였다
죄인 하나가 울고 있었다
울고 있어 죄인이었다
긴 울음소리를 다 듣고서야 돌아섰다
살면서 배운 것들은 잊으려 노력했다
다 잊었다
그런데도 잊히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그런 건 누가 가르쳐준 걸까 누가 가르쳐준 건 아닌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느리게 쏟아지는 붉은 빛과
푸른 빛
이름 없는 많은 색에 물들며
스테인드글라스 밖에서 여름이 발생했고
오르간 소리가 오래 들렸다
찬송이 끝나도 끝날 줄 모르던 오르간 소리
『현대시학』2016년 7월호
송승언 / 1986년 강원도 원주 출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11년《현대문학》신인추천으로 등단. ‘작란(作亂)’ 동인. 시집『철과 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