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의 가능성들/김경인
현대시 월평(2016년 11월호) 중에서
실패의 가능성들, 김경인
영문도 모르고 반짝이던 유리날개들
내 귓불에 매달린 나비 귀걸이와
물빛 노트를 쥐여주고
그가 손을 흔들며 돌아섰을 때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을 때
나도 난간에 기대 손을 흔들었지
그가 계단을 다 내려가
문을 열며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나를 올려다보며 손을 흔들었을 때
웃으며 한 발 내디뎠지
나는 구르기 시작했지
문은 반쯤 열린 채
닫히지 못하고 있지
그는 구르는 나를 올려다보고 있지
지금도 구르고 있지
여긴 어디쯤인가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인가
아직도 그는 나를 바라보고 있지
반쯤 닫힌 문 앞에서
문고리를 잡고
내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지
언제쯤 나는 바닥에 닿을 수 있나
언제쯤 어혈을 풀 수 있나 나는
언제쯤 나를 다 쓸 수 있나
밥을 먹을 때도
동사무소에 갈 때도
잠을 잘 때도
나는 끝없이 계단을 구르고 있지
그가 눈을 떼지 못하고 있지
문을 닫지 못하고 있지
― 정채원, 「끝없는 계단」(『현대시』, 10월호)
많은 문학작품들은 인간의 실패에 대해 기록해왔다. 시지프스의 신화가 분명히 보여주듯이, 인간은 삶을 벗어날 수 없는 일종의 굴레로 여긴다. 미래라는 것은 종국에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희망과 종말 그 두 극단을 향해 치닫는 인간의 삶은 그 자체로 부조리하다. 대부분의 신화에서 인간의 삶이 추락이나 하강의 이미지로 묘사되는 것은 이러한 비극성 때문일 것이다. 정채원의 시「끝없는 계단」에서 삶은 끝없이 하강하는 계단으로 형상화된다. '나'는 생의 정점에서 '물빛 노트'를 쥐여 주고 계단을 내려간 '그'를 만난다. 내가 구르기 시작한 때―즉, 내 삶의 운동성―는 바로 그가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한 순간부터이며 그때부터 나 역시 바닥에 놓인 문을 향해 아래로 굴러간다. 나의 바닥이자 계단의 맨 아래는 아마도 나의 근원일 것이다. 그 근원에는 '어혈'이 있다. 그리고 '나'의 상처야말로 시인에게 시를 쓰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내게 물빛 노트를 쥐여주면서 문학을 처음 알려준 사람인 그가 여전히 반쯤만 열린 문 안에서 나를 바라본다. 문-문학으로 가는 그 문 안에는 어떤 풍경이 펼쳐져 있을까? 그 문을 사이에 둔 나와 그의 관계는 어떠한가? 등이 궁금해지는 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