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네 번째 서랍
인간적/강연호
Beyond 정채원
2016. 11. 28. 15:35
인간적
강연호
임의의 한 점에서 같은 거리에 있는 점들의 집합처럼
나는 창을 연다 나를 연다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당신은 창문 밖에서 나를 엿본다 꼭 당신이 아니어도
나는 지금 출장 뷔페처럼 한 상 벌여 놓은 거다
당연히 아무거나 집어도 되지만 다 맛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뷔페의 정체성이란 둘러보는 데 있을 뿐이다
당신의 시선은 군침과 함께 내게 머문다
변태라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나는 저격 당한다
나는 하나인데도 도미노처럼 자꾸 넘어지고 넘어진다
나는 병들었나 나는 중독됐나 스스로 궁금해진다
나는 당신에게 묻는다 병들지 않고 어떻게 견딘단 말인가
당신은 내게 대답한다 중독되지 않고 어떻게 버틴단 말인가
내 질문은 변명의 형식이다 당신의 대답은 위로의 형식이다
형식이 오가고 있으므로 형식적으로 우리는 유대한다
이 은근한 추파의 유대가 얼마나 달콤한지 만끽한다
세상의 모든 황홀이 예비하는 아찔한 추락을 수락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연약하다 달리 말하면 인간적이다
인간적이라는 말은 인간만 쓴다 인간적으로 사실 비겁하다
나는 밤을 도와 도망친다 당신은 속옷 바람으로 아침을 준비한다
임의의 한 점에서 같은 거리에 있는 점들의 집합처럼
당신은 창을 닫는다 당신을 닫는다고 이해하기로 한다
『시산맥 』 2016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