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네 번째 서랍

물질의 영역/김정진

Beyond 정채원 2017. 4. 27. 16:01

물질의 영역

 

 김정진

 

 

 

수은이 손바닥을 통과하는 얘기를

들어본 적 있어?

 

멀리서 본 그들은 마주 보고 있었는데

가까이 다가가 본 그들은 서로의 반대편을 보고 있었습니다

 

수은의 밀도는 손보다 높아서 손바닥에

수은을 한 방울

떨어뜨리고 박수를 치면 수은이 손바닥을 통과한대

벽에 머리를 박던 남자가 벽을 통과하듯이

 

그 말을 들으니 피가 무거워집니다

바닥을 통과할 것 같아요

 

잘못 본 거겠죠 너무 빠르게 옆으로 흘렀거나

장외로 튀는 공을 놓친 변명이겠죠 깜빡하는 사이

빛 속으로 사라졌다거나 하는

 

잔이 바닥에 떨어졌는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요 당신은 그게

귀신이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바닥을 통과하면

어디로 나오게 되는 겁니까

 

먼지보다 조금 큰

모래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손으로 쓸어보면 다만 만져지는데

이 부스러기들은 무엇의 흔적입니까

잠시, 실례, 하겠, 습니까,

 

생각하지 않습니다

생각하지 않으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생각과 생각 사이에 내가 한 적이 없는 생각이

자꾸 끼어들어 생각하지 않을 틈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 물질은 무엇입니까

 

알코올은 잔보다 불분명하고

손은 책상을 통과하지 못하고

잔은 알코올보다 불투명하고

수은은 아크릴을 통과하지 못하고

알코올은 잔에 담긴 채 위태롭습니다

 

당신이 그것을 안다고 말할 수 있나요

눈사람의 입속에서 발견된 농담을

손가락을 비틀어 만든 개의 머리를

암막 커튼을 둘러싼 외로움과

심장이 뛰고 있던 베개를

 

자꾸 몸속을 흘러다니는 이 물질은

무엇입니까

지금

여기를 통과하고 있는 이 물질은

물질의 감정은

 

 

 

                       

『시로 여는 세상』2017년 봄호                        


김정진 / 1993년 전남 광양 출생. 한국예술종합학교 극작과 재학중. 2016년《문학동네》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