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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몽과사몽 10 -달아나는 자화상
Beyond 정채원
2017. 6. 4. 11:26
달아나는 자화상
정채원
그림 속 그를 볼 때마다
그가 살을 조금만 뺐으면 했다
그의 턱선이 더 서늘하기를
눈그늘에 고인 지루한 먹구름이 흩어지기를
그가 좀 더 자주 웃기를
그의 이마가 막 녹기 시작하는 얼음처럼 빛나기를
그가 나를 무심히 지나쳐
액자 너머를 응시하기를
내가 사랑한 건
그림 속의 그인지
나를 사랑한 건
그림 밖의 그인지
알 수 없다
나를 유리창처럼 지나쳐
허공 너머로 들어간 그가 그인지
깨지지 않는 그 안에서 뱅뱅 맴도는 내가 그인지
평범한 그 안에서
비범한 그를 포착하는 순간
그는 그림 속에도
그림 밖에도 이미 없다
이곳에서 오래가는 것은 없다
없는 그를 잡으러 뛰어가는 내가
오래 버려진 폐가 마당에서 울고 있는 새처럼
먼지 잔뜩 낀 액자 속
바람 속에 갇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