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주 전집 20권 완간

황현산 문학평론가·고려대 명예교수
은행나무 출판사가 최근 『미당 서정주 전집』 전 20권(사진)을 완간했다. 스무 권이나 되는 그 분량에 놀라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미당(未堂)은 2000년 말 86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여러 장르에 걸쳐 거의 거르는 날이 없이 글을 썼다. 양이 방대하고 좋은 글도 그만큼 많다.
전집은 시가 다섯 권이고, 자서전이 두 권이고, 이런저런 산문이 네 권이며, 시론도 있고 희곡도 있고 번역도 있다. 물론 쓰지 않았어야 할 글도 있다. 미당은 어떤 방식으로 서두를 끌어내어 이야기를 엮어도 중간에 ‘그러나’를 넣지 않고는 말하기 어려운 시인이다.
미당은 명백하게 친일시를 썼고 광복 이후에도 몇 차례에 걸친 정치적 과오를 저질렀다. 그러나 이 ‘그러나’ 이후의 말은 복잡하고 섬세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역시 명백한 것은 한국어를 아름답게 일으켜 세운 그의 공로를 부인할 수 없다는 점이다. 미당은 한국어가 말살될 위기에 처했던 1930년대와 40년대에 한국어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고 새로운 깊이를 만들었다.

책 '미당 서정주 전집', 서정주 지음.
![‘시의 정부’로 불린 미당 서정주(1915~2000). 그의 공과는 한국 문학의 공과와 같다. [중앙포토]](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08/26/1ac9450a-2f52-40a0-bd4d-5cb2c475a312.jpg)
‘시의 정부’로 불린 미당 서정주(1915~2000). 그의 공과는 한국 문학의 공과와 같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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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의 정치적 과오는 하나같이 우리의 역사적 비극과 연결돼 있다. 그 접점에서 미당은 옹호되고 비판돼야 한다. 미당의 과오를 그의 문학과 연결시켜 비판하고, 그 결과를 역사적으로 정리하자는 것은 그의 업적을 폄하하자거나, 그의 명예에 먹칠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 고뇌의, 혹은 그 비겁함의 짐을 역사의 이름으로 함께 나누어 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근대문학이 그렇듯이 미당은 안타깝게도 흠집 많고 일그러진 진주지만 또한 안타깝게 여전히 빛나는 진주다.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