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네 번째 서랍

우추프라카치아/문정영

Beyond 정채원 2017. 10. 21. 19:30

   우추프라카치아

  

 

    문정영

 

 

   내가 아는 호수의 발바닥

 

   발가락부터 조금씩 사라지는, 내가 쌓아온 것들은 붉은 발자국이

아니었어

 

   그렇게 걸어 꽃에 도착하기까지는 물무늬가 자갈 위에서 마르지

않아야 하는데

 

   내가 가 닿지 못한 호수는 호수라 부를 수 없어

 

   어느 날 발목이 사라진 꿈을 꾸고

 

   아침마다 가야 하는 그곳에 그날은 갈 수 없었지

 

   호수를 껴안으면 꽃이 되는, 햇빛도 바람도 그만큼 있어야 살 수 있

다는, 그곳에 당신은 피어서

 

   물기 없이 걸어가는 하루하루가 습자지 같다

 

   꽃이 피면 한 사람이 곁에 머물러야 한다는데

 

   내 발바닥이 비어서 더 이상 걸어갈 수가 없다

 

 

 

   『시사사』2017년 7-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