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각夢, 정채원

불쇼/정채원

Beyond 정채원 2013. 12. 18. 23:57

 

 

 

 

 

불쇼 
 
  
정채원

 

 

 
   불길은 왼쪽 가슴으로 번져나갔다 어깨를 타넘어 혀까지 타들어갔다 목구멍을 뚫고 터져나오는 불덩이, 한동안 입술을 깨물고 문을 걸어 잠갔던 것도 모두 허사였다 이리저리 막말이 불똥처럼 튄다 외계인은 왜 꼭 사람처럼 생겼을까 천사처럼 잘 웃을까 그 입에서 전갈이 나온다고 불로 막겠다고 내 입에서 나온 불덩이에 내 옆구리 눌어붙고…… 타는 냄새 진동해도 멈추지 못한다 불기둥을 맨가슴 위로 흔드는 차력사처럼 

 

    초승달 흉터는 심장 바로 위에 남았다 팔을 움직일 때마다 물린 자리가 눈웃음친다 초승달 뜬 앞산이 슬퍼 보인다 일 년 열두 달 만월을 보지 못하는 마을, 산사태로 뼈마디를 드러낸 벼랑에 벼락 맞은 나무가 있다 계속 고통스러워 하다가 결국 죽을 것 같은 뿌리가 드러나 보인다 검게 탄 나무둥치가 두 동강 나고도 물을 빨아들이는 걸 멈추지 못하는지 실뿌리는 끙끙거리며 한쪽으로 구부러져 있다 아물지 않은 절개지가 큰비에 붉은 토사를 울컥거리고

 

    쪼글쪼글해지는 날까지 장작불구덩이에서 기름방울을 뚝뚝 흘린다 바람이 끼얹는 모래 한 줌에 피식거리며 뒤척인다 공중제비하며 첩첩 화염바퀴를 통과하며 만리길 가는 가죽부대들, 그슬린 옆구리로 쉬지 않고 모래알갱이 새어 나간다 어제 불덩이의 고통은 잊고 새 불덩이를 보면 달려들어 삼키는 길에서

 

   비공개 불쇼가 끝난 후 잿더미 속에는 반짝이는 금니나 뽀얀 구슬 몇 알, 부러진 뼈마디를 잇던 나사못 몇 개도 남는다 긴 비에 떠내려가는 반쯤 타다만 기억들, 부서진 정강이뼈들

 

 

 

 

『시작』2013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