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네 번째 서랍
얼음은 직선으로 부서진다/정숙자
Beyond 정채원
2018. 10. 6. 08:30
얼음은 직선으로 부서진다
정숙자
녹음~흐름~~~
이미 나유타 겁의 경험을 내재한 그
그의 순수는 선천적이라지만, 어느 정도는 경험의 소산일 거야. 그의 전신, 혹은 그의 의식은 어떤 경
우에도 (가급적) 대상을 왜곡지 않아.
볕을 만나면 유유히,
혹한이 스미면 서서히 멈추곤 하지
그러나 만일 꽁꽁 언 그를 누군가 가격한다면
물답게. 얼음답게. 즉각적으로. 온몸으로. 대상을-정황을-상황을 흡수하지. 얼핏 부서져 보이지만 그
건 수용이야. 온몸으로 받아들인 대상을-정황을-상황을 분석/파악할 수 있게 되지. 깨어진 조각조각 면
면마다-선마다-비의가 눈떠.
왜 아프지 않겠는가
하지만 물은
사유하는 물이므로
통증을 길쌈하여 맑음을 새기곤 하지. 물은 그렇게 얼었다 녹았다 의문을 풀어 나가지. 그렇게 둥근 지
구를 얻고, 별들을 왕래하며 흐르는 봄과 두루미도 데리고 오지. '다시 얼면 되니까', '다시 흐르면 되니
까' 늘 한 쪽 팔 문질렀지만.
물은 자신과 꼭 닮은 친구도 있지
화탕지옥 견뎌낸 유리-창, 유리-인형,
유리-바이올린까지
그들은 서로 끓었던 얼었던 시공을 기억하지
그래서 그런 것일까
설령 원형감옥에 갇힐지라도
정공법 말고는 거들떠보지도 않지
『포지션』 2018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