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네 번째 서랍

시/시/각/각, 김제김영

Beyond 정채원 2018. 11. 30. 23:16

시/시/각/각


김제김영



사막은 불수의근이 발달했다

슬픔에 대한 공감을 과장한다


제 속은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

행인의 감정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으면서

행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지도 않으면서

행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듣고 싶지도 않으면서

대충 고개를 뜨덕거린다

가끔은 어깨까지 흔든다


그걸 온전한 공감으로 믿은 행인은

진종일 얘기를 했는데도,

사막은 토씨 하나 건네주지 않고

썰컹썰컹 서릿발만 자꾸 부풀린다


겨우 모래밭을 빠져나온 행인

스스로 착각의 결론을 내려야 하는 밤


사막은 알고 있는 것도

묻고 싶은 것도

없는

그저 모래산―


겹겹이 허물어지는 능선들을

헹구고 떠나는 바람소리,

그저 그런 새벽의

행인의 뜨거운 아침



『미네르바』2018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