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네 번째 서랍

편암(片巖)의 기록/안차애

Beyond 정채원 2019. 3. 23. 01:07


편암(片巖)의 기록


 

안차애

 


석영이나 운모의 얇은 층에 새어든
아침은 잎사귀 빛이다.


돌 속에서 자라는 돌은
동종교배처럼 푸르게 눈이 먼다.
하나를 지키기 위해 하나를 떼어주는 편리(片利),
어제를 지운 마음은
책력의 낱장처럼 저문 하루를 떨어뜨린다.


접힌 부록에서 목차를 꺼내는 사이,
몇 움큼의 낱말이 마르거나 변질되었다.
사랑이 사탕껍질보다 쉽게 구겨졌으므로
질문의 입은 켜켜 감정들을 뭉툭 베어 물 뿐.


박층(薄層)에선 웨하스 맛이,
습곡 이후의 사건에선 젤리 맛이 나는 표정이지만
외압이거나 외세, 외부거나 외풍이 없던 시절은
없었으므로 애초에 정답은 없었다.


점령군처럼 발자국을 뭉개며
찾아온 변성(變性).
해저 탁류보다 무거운 세력이 다녀갔던
기억의 암록이 내내 반짝거리고,


가정법도 감탄사도 없이, 변심한 얼굴은
아침에 예비된 저녁의 빛깔로
당신을 기다리다 천천히 어두워진다.

 

 

월간  『시인동네』 2019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