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네 번째 서랍
떨어뜨린 자세/안차애
Beyond 정채원
2020. 5. 22. 02:07
덴마크의 화가 페데르 크뢰위에르가 그린 <화가의 아내 마리의 초상>과
아내 마리 크뢰위에르가 그린 <자화상> 사이에
떨어뜨린 자세가 있다
마리, 부르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웃는 혀를 깨물고
그대로 멈춰라
동그란 이마
동그란 볼살
동그란 웃음
꾹 눌러도 튀어 오르는
동그란 색깔의 탄성
동그란 자세가 풍선처럼 폐활량을 늘이는 사이
마리의 팔레트엔
동그랗지 않은 색들이 쌓인다
마른 색 흐린 색 눌린 색이다
삐죽이는 색, 가라앉는 색, 홈 파인 색
뱀의 사다리에서 떨어뜨린 색이다
둥글 가망이 없는 모서리들이 절벽을 밀어 올리듯
어제의 얼음과 오늘의 먼지가 안색(顔色)으로 번진다
십오도 갸웃한 턱선의 자세를 뭉개는 사이
무채(無彩)의 실금들이 캔버스 바깥으로 뻗어나간다
한쪽은 멀고 한쪽은 깊은 오드아이의 눈빛으로
떨어뜨린 자세를 바라본다
얼굴이 깨지는 소리를 듣는 표정이다
『시산맥』 2020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