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에세이

구조주의로 시읽기(세계를 관통하는 문법을 찾아서)/ 오민석

Beyond 정채원 2020. 7. 31. 15:39

   나의 바다는 모래

   서걱이는 돌가루

 

   나의 바다는 모래

   밤마다 돌아가는 발전기

 

   나의 바다는 모래

   내 혀를 갈아내는 기계

 

                    ㅡ 박상순, 「바다를 입에 물고 너를 만난다」전문

 

 

   가령 박상순은 정반대의 '시소'들을 강제로 묶는다. 이런 방식(약호)를 통해 그가 의도하는 것은 주체의 분열과 대상의 분열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다. 위 시에서도 습성(濕性)의 "바다"와 건성(乾性)의 "모래"라는 이항 대립물이 강제로 연결되어 있다. "나의 바다는 모래"라는 발언은 이질적인 것들을 강제로 연결함으로써 "나"라는 주체가 동질성이 아니라 영원한 이질성의 결합물임을 보여준다. 게다가 이항대립물을 "발전기"로 돌림으로써 그는 주체의 분열을 가속화한다. "나의 바다"는 "내 혀를 갈아내는 기계"라는 구절을 보라. '갈아냄'에 의해 주체성(subjectivity)의 중심은 해체되고, 주체는 무한히 분열된다.  가령 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다음과 같은 구절들을 보라. "머리 없는 발, 발 없는 머리"(「일 초 동안 그들은 깊은 슬픔에 잠겼다」), "머리 없고 다리 없는  할아버지", "잘려진 손가락들", "눈알 뽑힌 머리통들"(「녹색 머리를 가진 소년」), 이처럼 그의 코드는 '통합된 주체(unified subject)'를 거부하고 '분열된 주체(split subject)'를 전경화하는 것이다. 그의 대부분의 시는 이런 문법에 의해 써진다.

 

 

《시인동네》2020년 7월호, 오민석의 「비평의 실제」중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