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네 번째 서랍

오늘 나는 산책을 했다/로베르 데스노스

Beyond 정채원 2020. 8. 12. 23:07

오늘 나는 산책을 했다

 

 

오늘 나는 내 동료와 산책을 했다,

비록 그가 죽었지만,

나는 내 동료와 산책을 했다.

 

꽃이 피어난 나무들이 아름다웠다,

그가 죽던 날 눈이 쌓였던 저 밤나무들.

내 동료와 함께 나는 산책을 했다.

 

오래전 장례식에

부모님은 당신들만 가셨다

나는 내 자신을 어린아이라고 느꼈다.

 

지금 나는 적다고 할 수 없는 망자들을 안다,

나는 장의사들도 많이 보았다

그러나 그들의 관에는 다가가지 않는다.

 

바로 그런 까닭에 오늘 나는 하루 온종일

내 친구와 산책을 했다.

그는 내가 조금 더 늙었다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조금 더 늙었다고, 하지만 그는 내게 말했다:

어느 일요일이나 어느 토요일

자네도 또한 내가 있는 곳으로 올 거야,

 

나는 그때, 꽃이 활짝 핀 나무들을, 저 다리 아래로

흐르고 있는 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불현듯 내가 혼자였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러자 나는 사람들 사이로 되돌아왔다

 

 

 

 

조재룡 번역

월간 《시인동네》 2020년 8월호 통권 8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