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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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허기/김상미

Beyond 정채원 2022. 9. 1. 20:27

봄날의 허기

 

김상미

 

 

활짝 핀 벚꽃나무 아래 서면

눈물 나게 화사한 그 꽃잎들만 보이지요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고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고

오로지 그 눈부신 꽃잎들만 보이지요

하늘 아래 벚꽃과 나만 존재하는 듯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눈으로

하염없이 서로를 바라보고 또 바라보지요

그러다 살짝 봄바람이 불어오면

그리운 화양연화의 빛가루처럼 흩날리는 그 꽃잎 하나하나가

강렬한 화염이 되어 온 가슴을 태우지요

그러면 어때요

매년 봄마다 잊지 않고 찾아오는 그 벚꽃에

마음 아무리 다쳐도 재가 되어도

활짝 핀 벚꽃나무 아래 서면

그 상처 또한 아득한 봄날, 최초의 꿈만 같아

아무리 덧없고 덧없어도

언제까지나 그 아래 서 있고 싶은걸요

손 쓸 수 없이 아름다운 몽유병자처럼

가이없이 그렇게

 

 

《문학청춘》 2022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