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민음사 4

개와 늑대와 도플갱어 숲/임원묵 시집

친한 사이    여기군요.  아직 열감이 남아 있어요. 누군가 방금 떠나간 자리입니다. 여기에 앉겠습니다.이 정도 온도라면 괜찮을 것 같아요. 사랑을 빼고 만나야 오래간다고 했던가요? 기억나는대로 카페인을 뺀 커피를 주문합니다. 밤이니까요. 두근거리지 않겠습니다. 대신 오래 앉아있을게요.밑줄을 긋다가도 고개를 젓고 담배를 피우다가도 숨을 참으며, 빈자리가 생기고다시 채워지고 또다시 떠나는 동안 수도 없이 종을 치는 문틈으로 빛이 들어올까 봐, 미미한 열감에 담요를 덮으면 콧등에 크림 묻는 꿈을 꾸겠지만, 몸을 일으키다 우유를 엎지르진않겠습니다. 감기에 걸린 거라 해도, 이 정도 온도라면 괜찮을 것 같아요. 사랑을 빼고 써야시가 된다고 했던가요? 기억나는 대로 썼습니다. 오래됐으니까요.   이 카페가 마음..

책소식 2024.12.24

마음의 왕자(다자이 오사무 산문집)/유숙자 옮김

책소개불안하고 고독한 청춘의 화신이자 전후 시대의 황폐한 정신 세계를 체현한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문학과 삶을 이해하기 위해 필독해야 하는 46편의 산문을 한데 엮은 『마음의 왕자』가 민음사 쏜살 문고로 출간되었다. 다자이 오사무는 우리나라 독자에게 특히 친숙한 일본 작가로, 그의 대표작 『인간 실격』, 『사양』 등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그러나 다자이와 그의 작품을 둘러싼 독자의 비상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정작 작가의 진면목을 살필 수 있는 산문은 파편적으로 소개되어 왔을 뿐, 좀체 일목요연하게 엮인 적이 드물었다. 이번에 출간된 『마음의 왕자』는 작가의 문학 인생을 초기(1933)부터 최후(1948)까지 톺아볼 수 있도록 결정적 작품만을 연대별로 엄선하여 수록한 산문집으로, 작가의 애독..

책소식 2024.12.21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꽃은 져서 어디로 가나/정채원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꽃은 져서 어디로 가나/정채원2009. 5. 9. 02:57 [서울신문] 꽃은 져서 어디로 가나/정채원  길을 잃고 헤매다한 마을로 들어섰다뜻밖에 만난 커다란 연못가득 피어 있던 연꽃들 아아 탄성을 지르며돌아서는 순간꽃 한 송이 하르르무너져 내렸다 ㄱㄱ ㅗ ㅊ수면에 떠 있었다 고요초저녁고추잠자리 우리는 어둑어둑한 길을 지나캄캄한 밤집으로 돌아왔다 다 무사하였다  정채원 제2시집 《슬픈 갈릴레이의 마을》, 민음의시 147

신문 2024.11.06

달나라의 장난(복간본)/김수영

달나라의 장난 팽이가 돈다 어린아해이고 어른이고 살아가는 것이 신기로워 물끄러미 보고 있기를 좋아하는 나의 너무 큰 눈 앞에서 아이가 팽이를 돌린다 살림을 사는 아해들도 아름다웁듯이 노는 아해도 아름다워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손님으로 온 나는 이 집 주인과의 이야기도 잊어버리고 또 한번 팽이를 돌려주었으면 하고 원하는 것이다 도회 안에서 쫓겨 다니는 듯이 사는 나의 일이며 어느 소설보다도 신기로운 나의 생활이며 모두 다 내던지고 점잖이 앉은 나의 나이와 나이가 준 나의 무게를 생각하면서 정말 속임 없는 눈으로 지금 팽이가 도는 것을 본다 그러면 팽이가 까맣게 변하여 서서 있는 것이다 누구 집을 가 보아도 나 사는 곳보다는 여유가 있고 바쁘지도 않으니 마치 별세계같이 보인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팽이 밑..

책소식 2020.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