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장석남 4

내가 사랑한 거짓말/장석남 시집

저자의 말겨울 뜰에서의 발길은 솔 앞에 가서 머뭅니다.봄 여름에는 가지지 않던 위치 이제 제법 ‘회고’가 많아지는 단계의 삶‘솔’의 그것이 내게 있는가?자문해보는 엄동의 때입니다. 검지의 굳은살이 지워지지 않은 것은 다행일까요? 2025년 1월장석남  목도장  서랍의 거미줄 아래아버지의 목도장이름 세 글자인주를 찾아서 한번 종이에 찍어보니문턱처럼 닳아진 성과 이름이 도장으로 무엇을 하셨나눈앞으로 뜨거운 것이 지나간다이 흐린 나라를 하나 물려주는 일에 이름이 다 닳았으니국경이 헐거워 자꾸만 넓어지는 이 나라를나는 저녁 어스름이라고나 불러야 할까보다어스름 귀퉁이에 아버지 흐린 이름을 붉게 찍어놓으니제법 그럴싸한 표구가 되었으나그림은 비어 있네  언덕 언덕파란 눈썹과 같은 언덕 나는 언덕을 사랑하지 않을 수 ..

책소식 2025.02.07

장석남의 「자화상」 감상/이성혁

자화상 장석남  신발은 구겨져 있다가죽 구두옷장의 옷들이 나프탈렌에 절어 있다바지 하나는 벨트가 끼워진 채 냉장고 옆에 쳐박혀 있다 오래된 냉동고가 가늘게 신음한다 무대는 갑자기 꺼져 버렸다나는 꽃을 든 채피를 흘린다 교도소로 납품되는 형벌들죄가 돈이 되는구나큰 죄가 큰 돈이 되는구나죄를 짓는 종사자들시를 짓다니! 멍청이 같으니라고오래된 한탄 속에노을이 목을 베러 온다노을을 목에 감는다 국적란에 붉은 선을 아름답게 긋는 화가시비詩碑의 전문을 긁어 백비를 만드는 시인재생되는 돌의 질감 배경에 깔고 천천히 나는나를 그린다  《POSITION》 2024 여름호 ------------------------------------------------------------------------------------..

비평·에세이 2024.11.10

서울, 2023 봄 외 1편/장석남

서울, 2023 봄  장석남  유골함을 받아 안듯오는, 봄이 언짢은 온기 산 송장들을 만드느라관청의 서류마다 죄가 난무하고 공원의 쇠 울타리 안에서 정원사들은 날 선 법복 차림으로꽃나무 뿌리마다 납 물을 붓고 있네화창한 사오월의 봄날에도납빛 꽃들이 신문지의 비열한 제목처럼 만발해 오리라 용답역 모퉁이에서 검은 무쇠 칼을 움켜쥐고더덕 껍질을 서걱서걱 긁어 까는 가난한 할머니만이망명한 봄을 숨겨 간직하였구나 나는 잠시 더덕 내음의 면회객이 되어 저편의 봄을 엿본다흙 껍질 속의 흰색! 장지壯紙 빛, 신비한 향기를 맡으며백범白凡의 그 두루마기 빛깔까지 허망 걸어가 보네 유골함의 온기 같은지금 2023년 봄볕을기록하여 두네    새 그리기   새를 그리고 그 옆에 새장을 그린다그러면 자유를 그린 것 같다새는 새장..

흰 죽 외 1편/장석남

흰 죽 흰, 창호지 내음새 창호지 내음새가 나서 울음 둘레 같은 것도 있다 느리게 빈산이 걸어와 비치고 산의 뒤편으로 울긋불긋 꽃마을도 숨었다 마알간 숨 아래 외던 경經처럼 흰 죽 한 그릇 젓던 손은 시리고 싸락눈이 와서 흐린 발자국도 생기는 흰, 길 그림일기 나무를 그렸다 하늘을 밀쳐낸 큰 가지들과 큰 가지를 필사적으로 붙드는 작은 꽃봉오리 가지들을 그릴 때는 숨을 죽이고 바다를 그렸다 수평선을 긋고 수평선을 넘어오는 옛날의 돛단배를 그렸는데 배는 한 번도 아주 온 적은 없다 집을 또 그렸다 바다를 그린 다음 날 우리 집, 사람이 없으면 그건 우리 집 틀림없이 새를 그린다 허공에 붙박이는 새는 커다란 입을 다물 줄을 모른다 하늘을 그린 적은 없다 낮과 밤, 봄, 가을 하늘은 한 번도 제 본디를 보여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