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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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색에 흘린 청색/조정인 시집

이렇게 고요하고 차가운 불꽃의 세계 왜냐하면 꽃들의 체온은 대체로 4ºC 이므로 집에 와 곰곰 생각하다가 저녁 먹고 이 닦고 다시 생각하다가 아, 꽃들은 이미 구백년간 잠든 채 갓 깨어난잠의 음악이거나 구백살인 채 태어난 어린 신들인 거라 신이기에 물론 슬픔 따위 몰라야 하는 이 깊은 슬픔 조정인 시집 《청색에 흘린 청색》, 창비시선 544

책소식 2026.09.20

달콤한 빙산/김상미 감성엽서

책소개 ‘고백시의 대가’, ‘한국의 아니 에르노’로 불리며 독자들의 깊은 사랑을 받아온 김상미 시인의 산문집이다.이번 책에서 김상미 시인은 자신의 시적 원류, 젊은 시절의 불꽃과 노년의 고요, 그리고 여전히 자신을 뜨겁게 이끄는 문학의 본질에 대해 담백하고도 절제된 언어로 고백한다.신작 산문은 시인으로 살아온 35여 년의 경력 속에서 길어 올린 가장 투명한 고백이다. 젊은 날의 격렬함부터 노년의 잔잔한 빛까지, 그의 문장은 결코 차갑지 않다.오히려 빙산처럼 단단하고, 깊으며, 서서히 달콤하게 녹아 우리의 마음에 스민다.그의 문학과 삶을 지켜본 독자에게는 반가운 엽서 같은 소식이며, 시인의 내면세계를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는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다가오는 ‘모든 물결의 무늬’가 될 것이다.* 출처 : 예스2..

책소식 2026.09.20

밤이 아니므로/전형철 시집

밤이 아니므로 이 방은 어두운 방, 거품의 방, 늙지 않는 방, 수헬리베의 방, 침묵의 방, 고통의 방, 리라의 방, 정오를 건너는 방 내 것이 아니었어야 하는 방, 깊은 잠 조용히 내려온 방, 뚫어져 밑창에 닿은 방, 첫 화장에 혼자 눈부신 방, 꽃 피고 슬픈 방, 흩어져 버릴까 꼭 쥔 방, 이렇게 주머니에 몰래 넣는 방, 누구도 찾지 않는 방, 숨죽여 아직은 아닌 방 가슴과 마음 밖에 있는 방, 꽃도 곰팡이도 없는 방, 언제나 네가 없는 방, 처음부터 없던 방, 이렇게 좋을 일도 없는 방, 어떤 눈동자도 없는 방너라는 눈부심과 가장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 꿈꿨던 방, 그래서 다시 심연에 깃든 괴물을 찾는 방, 울타리 너머를 오래 바라보다 서서히 양의 미소를 닮아 가는 여우의 방 가지고 싶으면 그렇게 ..

책소식 2026.09.20

정채원 시인의 "당연한데 당연하지 않은" 사건들/ 신원철

당연한데 당연하지 않은정채원 아침에 출근했으면저녁에 퇴근하는 것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떠났으면비행기를 타고 여행에서 돌아오는 것 늘 그랬듯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는데옆집 아들이 수학여행을 떠났는데젖은 트렁크만 집으로 돌아오고 축제가 끝난 이태원엔빨간 하트가 달랑거리는 머리장식과 신발짝들주인을 기다리고 주인은 어디 갔나 시집 한 권을 들고 산책 나간시인이 돌아오지 않는다, 겨울 지나 여름이 가도아직도 못다 읽었는지 금요일 정오에 약수역에서 만나기로 한 친구가목요일 오후부터 전화를 받지 않는다영영 지하철 옆자리에서오래된 꿈을 닮은 책표지를 넘기던 청년은 내리면서흘낏, 나를 돌아본다등이 구부정하고 쪼글쪼글한 얼굴이 되어 - 《미래시학》 (2026 가을) 전문.....................

비평·에세이 2026.09.20

창문/박세랑

창문 박세랑 묶여 있던 고통에서 멀리 날아가고픈 새가관절이 부러진 채로커튼 아래 떨어져 있다 아무렇게나 펼친 페이지 속엔터진 버찌들이 검게 멍들어 있다 식탁 위엔 흠집 없는 빵은 없고맞으면서도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경찰서와 병원이 아닌어떤 노래의 시작 앞에서 간신히 서 있는데 있는 힘껏 차도로 뛰어드는 햇빛들죽은 고양이 냄새가옷에 잔뜩 배어 있었다 쏟아지는 빛의 살점들이 사방으로 튀었다종종 날고 싶은 날에는내 몸에 창문을 그렸다 뛰며 춤추며 거리를 쏘다니는미친 사람처럼 내 안에서 물결이 흘러나왔다 빨강에도 뼈가 있을까툭툭 부러진 그늘이 입을 벌리면 날갯죽지를 살짝 움찔거리며죽는 것이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디까지가 상처인지 몰라서가위를 벌려 빛의 눈꺼풀을 도려내면 사방에 펼쳐진 그물이 나만..

데포르마숑 물상(物象)/강인한

데포르마숑 물상(物象) 강인한 한 방울의 물이 낙하한다.표면에 팽팽히 당겨지는 두려움,중력(重力)은천천히 안으로 끌어올린다. 빛이 닿는 순간물은 구형(球形)의 렌즈,세계를 한 점으로 끌어 모은다. 떨어지는 동안물은 자신을 통째로 껴안고허무의 중심을 계산한다. 너른 수면에 닿는 찰나음악처럼물결치는 파동, 시간이 원형으로 부서진다. —《문학청춘》 2026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