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정채원 11

정채원의 「Beyond The Scream*」 해설/ 김재홍

Beyond The Scream* 정채원  벽장에 넣어둔 가방이 새벽까지 뒤척거린다 가방 안에는 백 년 묵은 얼굴뭉크 전시회의 입장권카푸치노 두 잔의 영수증 버려도 버려지지 않고 이따금 기지개를 켜는기억의 올이 지금도 풀리고 있는지 휘갑치기, 사슬뜨기더 이상 올이 풀리지 않게 바세린을 발라 둔 단면이 있다자꾸 갈라지고 터져 피 흘리는끝단을 쓰다듬는 밤 절규(Scream) 이후귀를 틀어막아도 하늘 너머 또 어떤 하늘이꿈틀거리며 밀물지고 있는지  한 바늘씩 혹은 두 세 바늘 건너휘갑치기, 사슬뜨기더 이상 올이 풀리지 않게  * Edvard Munch 전시회  ------------------------------------------------------------------------------------..

비평·에세이 2025.04.05

사탕 마술 외 /정채원

논픽션 2 - 재방송 정채원   이 방엔 거울이 없다 그저 울 거는 많다 옆을 보아도 뒤를 보아도 물구나무 선 것들, 소리 없이 흐느끼는 것들이 널려 있다 훌쩍거리는 소리에 돌아다보니 상자가 하나 우그러지는 중이다 구겨진 종이들로 가득하다 구겨진 것들을 보면 펴보고 싶어진다 꿈이냐 현실이냐 선택하라는 글귀, 언제나 선택은 어렵다 아, 저기 유리창에라도 비춰보자 오른쪽으로 가란다 오른쪽 탁자 위엔 양면 거울이 하나 놓여 있다 한쪽은 실물 크기로 다른 한쪽은 확대경으로 된 거울이다 확대도 축소도 원치 않아 토끼귀는 토끼귀로 쥐똥은 쥐똥으로 보여줘 내가 내 눈동자를 볼 순 없겠지만 너도 네 정수리를 볼 순 없겠지만 네 눈동자에 비친 나를 보여줘 뒷모습은 뒷모습으로 담게 해줘 하긴 때로는 왜곡이 위안이 되기도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꽃은 져서 어디로 가나/정채원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꽃은 져서 어디로 가나/정채원2009. 5. 9. 02:57 [서울신문] 꽃은 져서 어디로 가나/정채원  길을 잃고 헤매다한 마을로 들어섰다뜻밖에 만난 커다란 연못가득 피어 있던 연꽃들 아아 탄성을 지르며돌아서는 순간꽃 한 송이 하르르무너져 내렸다 ㄱㄱ ㅗ ㅊ수면에 떠 있었다 고요초저녁고추잠자리 우리는 어둑어둑한 길을 지나캄캄한 밤집으로 돌아왔다 다 무사하였다  정채원 제2시집 《슬픈 갈릴레이의 마을》, 민음의시 147

신문 2024.11.06

제 1회 세계디카시인상

년 제1회 세계디카시인상 심사평-오형엽>  풍경과 내면의 충돌, 불꽃의 강도와 밀도  오형엽  심사위원들은 최근 출간된 디카시집들 중에서 본심 대상작을 선별하고 개별적으로 검토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심사일에 만나서 각자 추천한 디카시집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였고 그 과정에서 정채원 시인의 디카시집 『열대야』를 최종 수상작으로 선정하는 데 합의했다. 정채원 시인의 『열대야』는 디카시의 일반성 및 공통성을 범례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디카시의 특수성 및 고유성을 개성적으로 잘 보여주는 시집이라는 점에서 제1회 디카시문학상의 수상작이 되기에 손색이 없었다. ‘디카시적인 것’은 ‘사진의 가시적 장면’과 ‘시인의 비가시적 내면’이 순간적으로 접속하거나 충돌하면서 일으키는 ‘불꽃’이라고 ..

디카시 2024.10.29

<물질은 비물질을 껴안고 운다>, 정채원-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유시민

정채원, - 유시민,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중 퉁새할매 ・ 2024. 6. 24. 20:36 물질은 비물질을 껴안고 운다> 정채원​두개골 속 1.5킬로 고깃덩어리가나는 누구인가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도대체 사랑이란 게 있긴 있는가이런저런 것들을 캐묻는다자다가도 묻고 울다가도 묻고,이 세상에 보이는 건 모두 가짜 아닐까이 얼음 같은 사탕도 착각 아닐까물질이 자유의지를 갖고 물질을 와드득 깨물고물질과 비물질이 서로 밀고 당기고 엎치락뒤치락꼬리에 꼬리를 무는이 또한 누구의 희미한 기억 속일까무중력의 공간을 달려가는 그리움은백만 미터고 천만 미터고 거침없이 계속 달려간다잡을 수가 없다, 그대여 슬픔이여내 육신은 고작 백 미터도 도망치지 못하는데생각의 꼬리에 매달려 캄캄한 우주를 홀로 유영하는나는 누구의..

책소식 2024.07.31

피아불식 외 1편/정채원

피아불식彼我不識   적과 아군을 간단히 구분할 수 있습니다 개라고 믿으면 늑대가 되고늑대라 믿으면 개가 됩니다 개와 늑대는 같은 종種입니다 몸에 열이 많은 사람이 먹으면 좋다는수박과 오이는 박과科입니다손바닥을 뒤집지 않아도같은 과科입니다 적이 아군이고아군이 적입니다 구분하는 건 쉽습니다구분할 수 있을까요? 계, 문, 강, 목, 과, 속, 종 적과 아군을 구분하면 추위에 좋다고 합니다같은 조상이지만더위에도 좋다고 합니다     논픽션(Nonfiction)― 김범, 바위가 되는 법   표범처럼 목이 짧아진 기린이 치타를 잡으러 달려간다, 잡힐 듯 잡힐 듯 치타는 죽어라 도망치고. 배가 불룩한 임산부가 되어버린 망치가 누워있다. 나는 치타에게 총을 겨눈 채 10년이 가고 100년이 간다, 아직도 쏘지 못한 채..

< 프랑스시협 및 프랑스어권작가-시인협회 사화집>

한국시인협회는 지난해 3월 프랑스시인협회와 양국 시인들의 작품 교류를 포함한 상호협력 협약을 맺은 바 있습니다. 에 회원 여러분의 작품이 게재되었습니다. 떠날 줄 알게 하소서 유자효 잃을 줄 알게 하소서 가짐보다도 더 소중한 것이 잃음인 것을 이 가을 뚝 뚝 지는 낙과의 지혜로 은혜로이 베푸소서 떠날 줄 알게 하소서 머무름보다 더 빛나는 것이 떠남인 것을 이 저문 들녘 철새들이 남겨둔 보금자리가 약속의 훈장이 되게 하소서 대체 불가 정채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사자가 20만이 넘는다는 말도 있다 그렇다면 20만 가족이 누구는 아들을 잃었고 누구는 아버지를 잃었고 누구는 남편을 잃었고 누구는 연인을 잃었다는 것이다 대체 불가 이 세상에 단 하..

책소식 2024.01.28

나를 막지 말아요/정채원, 경향신문

詩想과 세상 나를 막지 말아요 입력 : 2022.06.27 03:00 수정 : 2022.06.27 03:01 김정수 시인 가슴에 구멍을 뚫으면 피리가 되지 몇 개를 막으면 노래가 되지 노래에 구멍을 뚫으면 춤이 되지 자면서도 멈출 수 없는 춤 떼 지어 다녀도 늘 혼자인 춤 구멍이 다 막히는 날 노래도 춤도 다 막히고, 막이 내리지 다음 공연은 아직 미정 정채원(1951~) 자화상 같은 이 시는 막힘과 뚫림, 멈춤과 흐름의 인생사를 피리와 노래, 춤을 통해 보여준다. 희로애락(喜怒哀樂)이라는 말이 상징하듯, 인생은 기쁨·즐거움의 ‘흐름’과 노여움·슬픔의 ‘멈춤’이 반복된다. 살다 보면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다. 내 삶만 불행한 것 같지만 세월이 흐른 뒤 되돌아보면, 슬픔 속에 기쁨이 있음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