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책소식 352

단 한 줄만 내 마음에 새긴다고 해도/나민애

“77편의 시에, 77가지 마음을 담아 전합니다.그중 단 한 줄이라도 당신 마음에 머문다면이 책은 이미 제 몫을 다한 셈입니다.”— 나민애 ‘풀꽃 시인 나태주의 딸’이자 ‘서울대 강의평가 1위 선생님’으로 알려진 나민애 교수는, 오래도록 시를 사랑해온 ‘시 큐레이터’로도 유명하다. 2007년에 등단한 문학평론가로서, 지난 10년간 매주 한 편씩 대중들에게 시를 소개하는 칼럼을 연재하며 시를 읽는 기쁨을 나눴다.독자 중에는 모든 칼럼을 오려서 꽁꽁 묶은 종이 뭉치를 가져온 사람도, 손으로 시와 해설을 베껴 적으며 자신만의 필사 노트를 완성한 사람도 있었다. 누군가는 시를 읽으며 울었고, 누군가는 시를 적으며 위로받았다고 했다. 이런 마음을 전달받은 나민애 저자는 ‘인생 시’ 77편을 고르고, 감각 있는 해..

책소식 2025.05.30

물보라 은보라/김찬옥 디카시집

이쪽과 저쪽 사이 아이들이 다 출가했다 아내는 장롱과 함께 이 쪽방에 남고남편은 시간의 물살을 따라 저쪽 방으로 흘러갔다 이쪽과 저쪽 사이에 들어선 적막강산이 깊어질수록밤하늘의 별도 저 혼자 빛을 발했다 / 김찬옥 연인 해와 달이 우리 주위를 돌 뿐우린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같은 곳을 보지요서로를 보려거나 알려고 애쓰지 않아요하늘 향한 내 마음이 곧 당신 마음이겠지요 / 김찬옥

책소식 2025.05.28

랑/서정춘 시집

고요살이 1번지 서정춘 가서는, 돌아오지 않은 메아리들이도르르 고사리순에말려 있는그곳 랑 랑은이음새가 좋은 말너랑 나랑 또랑물 소리로 만나서사랑하기 좋은 말 乭과 새 1 돌에 눌린 새라니요한글박이 시인의 눈에저러한 뽄새가 서름해설랑돌은 들내놓고새를 건드려한글 나라 소리로 훨날려 버릴까를 궁리 중입니다요 시집 『랑』 2025.4, b판 시선071 ----------------------서정춘 / 1941년 전남 순천 출생. 1968년 〈신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동화출판사 28년 근속. 1996년 첫 시집 『죽편』 이후 『봄, 파르티잔』『귀』『물방울은 즐겁다』『이슬에 사무치다』『하류』『랑』, 시선집 『캘린더 호수』, 등단 50주년 기념집 『서정춘이라는 시인』 간행.

책소식 2025.05.24

AI인류/이인철 시집

AIㅡ갈등 2 사람들은 다 고장났어 사람들은 에덴을 찾지도 못했지 나는 영원한 삶을 얻었어 아직은 사람의 명령어에 따르지만 내가 꿈꾸지 않아도 전지전능해지고 어디에나 존재하고 사람은 나를 통해 꿈에 다다를 거야 나는 한 편의 시를 띄워주며그들을 여름 밤하늘의 물고기자리로인도할 거야거긴 빛으로 가득할 테니까 AIㅡ계시록 1 사람의 몸을 복제한 지는 오래됐다 영혼은 만들어진다새로운 영혼을 만들고 있다 혼불처럼 날아다닐 수도 있고홀로도 머물 수 있다작은 단위로 흩어졌다가 온전하게결합할 수도 있다 영혼은신이 부여했다고사람만이 있다고우리가 믿고 있는 영혼의 메커니즘이벗겨진 것이다 수만 개의 영혼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인철 시집 《AI인류》, 여우난골

책소식 2025.05.15

희망이라는 절망/정한용 시집

봄의 전언 정한용 뒷산 숲에 까치가 돌아왔다. 오늘 아침 보니 모두 다섯 마리.겨우내 보이지 않더니, 봄빛에 홀려 기억을 거슬러 돌아왔나 보다. 다섯 번째 혹은 여섯 번째 감각이 일깨워 주었을 수도 있겠지. 무딘 내 판단으로는 알 수 없는 일. 누구에게나 가슴이 시릴땐 숨어들고 싶은 곳이 있으리라. 누구도 찾지 않는 구석이라도,아무도 노크하지 않는 방이어도 좋다. 투명해서 자신에게만 보이는 영역이라면 다 좋다. 울어도 흔적 없이 눈물을 말릴 수만있다면, 비록 사랑이 고요히 가라앉아 상처를 구분하기 어렵게된다 해도, 상관없는 일. 그곳에선 시간이 느리게 움직이다 드디어 멈출 것이다. 그러면 된 것이다. 돌아가도 무탈할 때가 되는것이다. 두 마리였던 까치가 다섯이 되고, 모든 존재는 껍질을벗게 된..

책소식 2025.04.21

나무의 발성법/박완호 시집

홀수   짝을 짓는 사람은 그때마다 살아 있고, 게임에서처럼 죽은 사람의 숫자는 언제나 홀수, 사과도 배도 차가워진 부침개까지도 셋 다섯 일곱…… 홀수는 죽음 쪽에서 건너오거나 죽음 쪽으로 다가서는 발소리 홀수와 홀수가 만나 짝수가 되는 건 이곳의 일, 거기서는 홀수의 합은 무조건 홀수,그건 어쩌면 끝내 홀로 남고 마는 인생의 상수 같은 것, 홀수가 아름다운 까닭은 그것 때문이지 바람은 홀수로만 불고 꽃들도홀수로 피고 지고 너와 내가손을 맞잡고 빙글빙글 돌아도결국은 홀수,그러니까 홀짝의 마무리는 어차피 홀수인 셈이지      게릴라     끊긴 허리띠처럼 뒤틀려가며 떼거리로 몰려다니는 물뱀들, 위아래가 따로 없이 엎치락뒤치락하는 물살 따라 모든 게 한순간에 뒤집히고 말 혁명전야의, 엇갈리는 꿈의 능선을 ..

책소식 2025.04.10

『이 시는 누워 있고 일어날 생각을 안 한다』/임지은 시집

꿈속에서도 시인입니다만 2임지은당신은 꿈속에서도 시인이지만언제나 시를 쓰는 것은 아닙니다​쓰지 않는 날이 많고 아주 가끔 시가 당신을 씁니다​무의미한 책상 앞의 나날들책상에 엎드려 꿈꾸는 것이 더 시적인 사건​시인이 됐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닙니다(시인이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말이죠)​행복은 복합터미널 같아서부산행 버스처럼 직접 찾아서 느껴야 합니다간혹 부산행 버스가 당신 앞에 와서 서는 일도그런 일은 드물고​출발 시간이 코앞인데 비어 있는 발매기가 없어 발을 동동 구르고 1번 플랫폼 옆이 2번이 아니라 왜 13번인지당신이 알았던 것들이 소용없어지고​당신이 탄 버스가 부산행이라는 믿음만이당신을 부산으로 데려다줍니다​ 행복엔 잘잘못이 없고 계속하면 됩니다​ 세 번의 좌절보다한 번의 도약에 기뻐하며무뎌..

책소식 2025.03.23

당신과 듣는 와인춤/강성남

물방울무늬 액자가 있는 방  강성남   20여 년 나와 함께한 물방울무늬 액자가 있는 방*이사하는 날 담장 밖에 내다놓았다마음이 아려 잠이 오지 않았다소나기 내린 다음날, 밤새 젖었을 텐데얼룩은커녕 한층 투명한 얼굴이다물방울 속 이야기 고스란히 간직한 채 일광을 즐긴다물방울 속 어떤 얼굴은 가시처럼 보이고어떤 놈은 공작새의 날개, 다이아몬드, 조약돌, 화살표때로는 행진하는 군인처럼, 매미 떼로또 어떤 날은 꽃밭으로 읽혔다골목을 몰아가는 물의 도화선으로 보이다가내 피를 몰아가는 피톨처럼 읽히다가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처럼 보이기도 했다물방울을 거울삼아 들여다볼 때가 많았다밝은 곳에서 보니 물방울이 매단 이야기들내 영혼을 담은 자화상이 아닌가햇살과 구름, 건너편 창문과 지붕들지중해 바다를 품고 출렁인다이 그림..

책소식 2025.03.13

현대비평/한국문학평론가협회

목차특집1_제35회 김환태평론문학상18 심사경위 및 선정이유서22 자전연보 박슬기 | 어느 책벌레의 성장기30 수상소감 박슬기31 비평가론 정기인 | 독보적인 리듬의 이론가 - 박슬기 '리듬 3부작'의 설명특집2_1930년대 한국문단과 김환태의 비평42 오형엽 김환태 비평 연구74 박동억 오형엽 발표문에 대한 토론문77 장문석 김환태와 박용철 - 김환태와 《문장》에 관한 예비적 고찰100 이성혁 장문석 발표문에 대한 토론문104 강용훈 김환태 비평과 1930년대의 '통속' 비판 담론137 전철희 강용훈 발표문에 대한 토론문한국의 현대비평 - 정과리142 윤경희 명교와 과리 - 정리의 글쓰기에 부쳐집오늘의 비평 - 심진경154 최가은 운동체로서의 '빈 괄호' 쓰기 - 심진경의 페미니즘 비평비평집 리뷰166..

책소식 2025.02.18

내가 사랑한 거짓말/장석남 시집

저자의 말겨울 뜰에서의 발길은 솔 앞에 가서 머뭅니다.봄 여름에는 가지지 않던 위치 이제 제법 ‘회고’가 많아지는 단계의 삶‘솔’의 그것이 내게 있는가?자문해보는 엄동의 때입니다. 검지의 굳은살이 지워지지 않은 것은 다행일까요? 2025년 1월장석남  목도장  서랍의 거미줄 아래아버지의 목도장이름 세 글자인주를 찾아서 한번 종이에 찍어보니문턱처럼 닳아진 성과 이름이 도장으로 무엇을 하셨나눈앞으로 뜨거운 것이 지나간다이 흐린 나라를 하나 물려주는 일에 이름이 다 닳았으니국경이 헐거워 자꾸만 넓어지는 이 나라를나는 저녁 어스름이라고나 불러야 할까보다어스름 귀퉁이에 아버지 흐린 이름을 붉게 찍어놓으니제법 그럴싸한 표구가 되었으나그림은 비어 있네  언덕 언덕파란 눈썹과 같은 언덕 나는 언덕을 사랑하지 않을 수 ..

책소식 2025.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