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책소식 348

희망이라는 절망/정한용 시집

봄의 전언 정한용 뒷산 숲에 까치가 돌아왔다. 오늘 아침 보니 모두 다섯 마리.겨우내 보이지 않더니, 봄빛에 홀려 기억을 거슬러 돌아왔나 보다. 다섯 번째 혹은 여섯 번째 감각이 일깨워 주었을 수도 있겠지. 무딘 내 판단으로는 알 수 없는 일. 누구에게나 가슴이 시릴땐 숨어들고 싶은 곳이 있으리라. 누구도 찾지 않는 구석이라도,아무도 노크하지 않는 방이어도 좋다. 투명해서 자신에게만 보이는 영역이라면 다 좋다. 울어도 흔적 없이 눈물을 말릴 수만있다면, 비록 사랑이 고요히 가라앉아 상처를 구분하기 어렵게된다 해도, 상관없는 일. 그곳에선 시간이 느리게 움직이다 드디어 멈출 것이다. 그러면 된 것이다. 돌아가도 무탈할 때가 되는것이다. 두 마리였던 까치가 다섯이 되고, 모든 존재는 껍질을벗게 된..

책소식 2025.04.21

나무의 발성법/박완호 시집

홀수   짝을 짓는 사람은 그때마다 살아 있고, 게임에서처럼 죽은 사람의 숫자는 언제나 홀수, 사과도 배도 차가워진 부침개까지도 셋 다섯 일곱…… 홀수는 죽음 쪽에서 건너오거나 죽음 쪽으로 다가서는 발소리 홀수와 홀수가 만나 짝수가 되는 건 이곳의 일, 거기서는 홀수의 합은 무조건 홀수,그건 어쩌면 끝내 홀로 남고 마는 인생의 상수 같은 것, 홀수가 아름다운 까닭은 그것 때문이지 바람은 홀수로만 불고 꽃들도홀수로 피고 지고 너와 내가손을 맞잡고 빙글빙글 돌아도결국은 홀수,그러니까 홀짝의 마무리는 어차피 홀수인 셈이지      게릴라     끊긴 허리띠처럼 뒤틀려가며 떼거리로 몰려다니는 물뱀들, 위아래가 따로 없이 엎치락뒤치락하는 물살 따라 모든 게 한순간에 뒤집히고 말 혁명전야의, 엇갈리는 꿈의 능선을 ..

책소식 2025.04.10

『이 시는 누워 있고 일어날 생각을 안 한다』/임지은 시집

꿈속에서도 시인입니다만 2임지은당신은 꿈속에서도 시인이지만언제나 시를 쓰는 것은 아닙니다​쓰지 않는 날이 많고 아주 가끔 시가 당신을 씁니다​무의미한 책상 앞의 나날들책상에 엎드려 꿈꾸는 것이 더 시적인 사건​시인이 됐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닙니다(시인이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말이죠)​행복은 복합터미널 같아서부산행 버스처럼 직접 찾아서 느껴야 합니다간혹 부산행 버스가 당신 앞에 와서 서는 일도그런 일은 드물고​출발 시간이 코앞인데 비어 있는 발매기가 없어 발을 동동 구르고 1번 플랫폼 옆이 2번이 아니라 왜 13번인지당신이 알았던 것들이 소용없어지고​당신이 탄 버스가 부산행이라는 믿음만이당신을 부산으로 데려다줍니다​ 행복엔 잘잘못이 없고 계속하면 됩니다​ 세 번의 좌절보다한 번의 도약에 기뻐하며무뎌..

책소식 2025.03.23

당신과 듣는 와인춤/강성남

물방울무늬 액자가 있는 방  강성남   20여 년 나와 함께한 물방울무늬 액자가 있는 방*이사하는 날 담장 밖에 내다놓았다마음이 아려 잠이 오지 않았다소나기 내린 다음날, 밤새 젖었을 텐데얼룩은커녕 한층 투명한 얼굴이다물방울 속 이야기 고스란히 간직한 채 일광을 즐긴다물방울 속 어떤 얼굴은 가시처럼 보이고어떤 놈은 공작새의 날개, 다이아몬드, 조약돌, 화살표때로는 행진하는 군인처럼, 매미 떼로또 어떤 날은 꽃밭으로 읽혔다골목을 몰아가는 물의 도화선으로 보이다가내 피를 몰아가는 피톨처럼 읽히다가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처럼 보이기도 했다물방울을 거울삼아 들여다볼 때가 많았다밝은 곳에서 보니 물방울이 매단 이야기들내 영혼을 담은 자화상이 아닌가햇살과 구름, 건너편 창문과 지붕들지중해 바다를 품고 출렁인다이 그림..

책소식 2025.03.13

현대비평/한국문학평론가협회

목차특집1_제35회 김환태평론문학상18 심사경위 및 선정이유서22 자전연보 박슬기 | 어느 책벌레의 성장기30 수상소감 박슬기31 비평가론 정기인 | 독보적인 리듬의 이론가 - 박슬기 '리듬 3부작'의 설명특집2_1930년대 한국문단과 김환태의 비평42 오형엽 김환태 비평 연구74 박동억 오형엽 발표문에 대한 토론문77 장문석 김환태와 박용철 - 김환태와 《문장》에 관한 예비적 고찰100 이성혁 장문석 발표문에 대한 토론문104 강용훈 김환태 비평과 1930년대의 '통속' 비판 담론137 전철희 강용훈 발표문에 대한 토론문한국의 현대비평 - 정과리142 윤경희 명교와 과리 - 정리의 글쓰기에 부쳐집오늘의 비평 - 심진경154 최가은 운동체로서의 '빈 괄호' 쓰기 - 심진경의 페미니즘 비평비평집 리뷰166..

책소식 2025.02.18

내가 사랑한 거짓말/장석남 시집

저자의 말겨울 뜰에서의 발길은 솔 앞에 가서 머뭅니다.봄 여름에는 가지지 않던 위치 이제 제법 ‘회고’가 많아지는 단계의 삶‘솔’의 그것이 내게 있는가?자문해보는 엄동의 때입니다. 검지의 굳은살이 지워지지 않은 것은 다행일까요? 2025년 1월장석남  목도장  서랍의 거미줄 아래아버지의 목도장이름 세 글자인주를 찾아서 한번 종이에 찍어보니문턱처럼 닳아진 성과 이름이 도장으로 무엇을 하셨나눈앞으로 뜨거운 것이 지나간다이 흐린 나라를 하나 물려주는 일에 이름이 다 닳았으니국경이 헐거워 자꾸만 넓어지는 이 나라를나는 저녁 어스름이라고나 불러야 할까보다어스름 귀퉁이에 아버지 흐린 이름을 붉게 찍어놓으니제법 그럴싸한 표구가 되었으나그림은 비어 있네  언덕 언덕파란 눈썹과 같은 언덕 나는 언덕을 사랑하지 않을 수 ..

책소식 2025.02.07

고백은 어째서 편지의 형식입니까?/오병량 시집

오병량(지은이)의 말 봄 앞에 앉아,나는 여태,나의 주어가 못 되는 처지입니다.당신의 마음은 잘 지내고 계신가요?그립다,죽겠습니다.    꿈의 독서  방안을 살피는 일이잠자리를 들추는 일이 아니기를책을 살피는 일이 문장을 소독하는 일이아닌 것처럼 눈의 검은자가흰자위의 독백을 이해할 때꿈이 찾는 조용한 가치들 선명한 여름인데 우리찢긴 페이지처럼 갈피가 없어너는 말없이 울고 빗물에 젖은 새처럼 흐느끼고하마터면 내 눈에 쏟아질 것 같은 널 안고팔베개를 해주었지책을 보았는데, 꿈은커다란 구렁이를 목에 휘감고 자는 일이래그럼 무섭지 않아요?너와 나 우리 모두가 그런 거라면그렇지 않다고 나는 말해주었지용기가 난 듯, 너는 넘어진 책장을 일으켜 세운지난밤 꿈 얘기를 했는데, 불길한 눈을 가진계집애를 보았다고 분명어려..

책소식 2025.02.06

불안할 때만 나는 살아 있다/안주철 시집

보르헤스의 시 동그랗게 말린 시를 건네면서 보르헤스는 낭독을 부탁했다 대답 대신 동그랗게 말린 시를 서서히 펴고 시를 바라보았다 라틴어로 쓴 보르헤스의 시를 읽을 수 없었지만 계속 들여다보아도 긴장이 되거나 관객이 두렵지 않았다 시를 계속 바라보고 있는데 모르는 글자에서 꽃이 피기 시작했다 보르헤스도 관객도 나도 사라졌지만 꽃이 계속해서 자랐다 비가 오겠다 내 가슴에서 출발한 눈물이 당신의 눈에서 쏟아지는데도 나는 모른다 어디까지가 눈물인지 당신의 이마와 당신의 주름과 당신의 쓸쓸한 나이를 나는 세고 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서 내가 왜 눈물을 흘리는지 모르는 한 마리 구석이 될 때 누군가 나를 손끝부터 머리끝까지 눈물로 오해하고 가슴을 쓸어내리듯이 비가 오겠다 외롭다 그립다 쓸쓸하다 이런 말들 밖에..

책소식 2025.02.05

허리를 굽혔다, 굽혀 준 사람들에게/한영옥 시집

구원의 감각 한영옥  밤늦어 외진 벌판 시골 정거장에왜 홀로 으스스 떨고 있었나까닭이야 앞과 뒤로 수북하지만두려움 껴입고 서 있어야 했던구구한 사정을 말할 필요는 없는 것그 자리에서 생생하게 겪어 낸초조와 불안 요동치던 맥박그리고 어느샌가 옆자리를 채워 준연인들의 따끈한 입김에 대한 기억공포감이 툭 터질 듯하던 때에언 몸을 다독여 주던 구원의 감각감각은 구원의 기미에 민감하다는 걸그 이후에 떠올려 보고 했었다오래 불안감에 시달리는 네게 전한다'불안은 불안이 불안해하는 거'라는푸른 페이지의 문장을    폐일(吠日)한영옥해를 보고 짖는 개를 보았네해를 처음 본 탓이라고 알고 있네제 알던 범위에서 벗어난낯선 눈부심이 두려운지점점 맹렬하게 짖어가네제 알던 범위에서 훌쩍 벗어난콸콸 끓어오르는 해를 보며짖는 도리밖..

책소식 2025.02.04

동주 시, 백 편/이숭원

상세 이미지저자 소개 (1명)저 : 이숭원 (李崇源)관심작가 알림신청 작가 파일1955년 서울 출생으로 문학 박사이자 문학 평론가이다.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와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하고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충남대학교와 한림대학교, 서울여자대학교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서울여대 명예교수로 있다. 1986년 평론가로 등단하여 한국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현대불교문학상, 김환태평론문학상, 편운문학상, 김달진문학상 등을 받았다. 저서 『서정시의 힘과 아름다움』, 『백석을 만나다』, 『영랑을 만나다』, 『백석 시의 심층적 탐구』, 『정지용 시의 심층적 탐구』, 『김기림』, 『노천명』, 『세속의 성전』, 『폐허 속의 축복』, 『감성의 파문』, 『폐허 속의 축복』, 『초록의 시학을 위하여』, 『시 속으로』,..

책소식 2025.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