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말>
내 몸속에 다른 생물이 들어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어언 20년이 다 돼간다.
아니, 훨씬 더 아득한 날부터다. 몸 안의 생물이 조종하듯 나는 한밤중에도
물가로 갔고 들판을 헤매었으며 바람 속에서 꽃을 꺾었다.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모래언덕을 기어오르다 날이 밝아오곤 하였다. 몸 안의 그 생물은
내 고독과 불안과 슬픔을 먹고 자랐다. 자라면 또 알을 낳았고 유충은 자
라면서 더 많은 먹이를 필요로 했다.
그를 품고 살며 늘 추웠다 더웠다 한다. 얼었다 녹았다 하며 하루하루 모호
하게 메말라간다. 여러 겹으로 안전하게, 안전하게 부서져 간다.
2014년 4월
'제3시집 일교차로 만든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짝눈’의 시선과 ‘패치워크’의 시법/이성혁(문학평론가) (1) | 2023.05.10 |
---|---|
시집 서평/'짝눈'의 시선과 '패치워크'의 시법/이성혁 문학평론가 (0) | 2021.11.08 |
시집 해설/암흑의 타자 또는 에로스의 덩어리/황현산(문학평론가) (0) | 2021.1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