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강성철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제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이미 새가 아니다
뻐꾸기는 둥지가 없기 때문이다
남의 둥지에 잘 있는 알을 내다 버리고
그 자리에 자신의 알을 낳는 뻐꾸기는 정신병자다
영어의 'cuckoo'는 뻐꾸기라는 뜻도 있지만
정신병자라는 뜻도 있다고 한다
뻐꾸기 새끼도 정신병자다
막 부화하려는 원주인의 알들을 밀쳐버리고
자신이 진짜 새끼인 양
양어미 새가 물어다 주는 먹이를 먹고 무럭무럭 자란다
자기 새끼를 죽인 뻐꾸기 새끼가 자신의 진짜 새끼인 양
헌신적으로 먹이를 물어다 주는 양어미 새도 역시 정신병자다
오랫동안 내 거실을 지켜온 뻐꾸기시계가 있다
뻐꾹 뻐꾹, 매시간 시계의 몸을 가르고 나와
울어대는 저 뻐꾸기시계 역시
자신의 시계 새끼도 아닌 뻐꾸기 새끼를 제 몸에 키우며
매시간 "땡 땡 땡"울지 않고
"뻐꾹 뻐꾹", "cuckoo, cuckoo" 울어댄다
이 거대한 정신병동인 세상에서
나도 뻐꾸기시계 하나쯤은 가지고 사는 게 아닐까?
친자 확인 검사가 난무하는 세태 속에서
친자식 같은 시는 생산하지 못하고
뻐꾸기시계 같은 시만 매시간
"뻐꾹 뻐꾹"
"cuckoo, cuckoo" 울어대는 것은 아닐까?
강성철 시집 《슬픈 아일랜드》, 시인동네 시인선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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