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박하
휜 커튼으로 무얼 가릴 수 있을까
휘발된 아침이 돌아오면 처음인 듯 들어오는 빛
그날 아침 얼굴은 너무 차가웠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때처럼 나보다 나를 더 간섭하는 것
새 연필, 새 노트,
손대지 않으면서 자꾸만 새 것을 사고 있다
우주 공간 어디선가
네 목소리가 낯선 행성을 돌고 있다
창을 열면
박하 향이 공기 중에 머물다 사라진다
날이 밝으면 사라지는 새벽노을,
항상 곁에 있을 것만 같이 봄이면 푸른 들판에서 불쑥
손 내미는 것들
환한 대낮에도 그 자리에 있었던 별들은
뭘까,
몸을 가진다는 것은
이 창백한 별을 스쳐 지나가는 것은?
어떤 나라를 말지
우리가 가보지 않은 어떤 나라, 거긴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곳이지
왜 우리는
캄캄해져야 별을 볼 수 있을까
이미 폭발했거나 거기 없더라도
빗나간 시간을 건너와서, 지금
막 우리 눈에 드는, 죽은 다음에도 캄캄하게 달릴 수 있는
거기, 내 손을 얹는다
네가 방랑의 푸른 빛을 향해 달려가듯이
근작시
《현대시》 2023 9월호에 재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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