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밤의 네 번째 서랍

역사/허만하

Beyond 정채원 2015. 9. 24. 22:15

역사

 

 

 

허만하

 

 

  나는 드디어 멀리 이도시를 떠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때 없어지는

것은 내가 아니다. 무수한 도시 가운데의 하나의 도시가 흔적 없이 사라

질 뿐이다.

 

  그렇게 기록을 혐오하며 고요히 멸망한 이름 없는 왕조가 있다. 느닷

없이 쏟아진 한 줄기 소나기에 흠뻑 젖은 길바닥에 고인 물이 잦아들 때

그 안에 잠겨 있던 하늘이 사라지듯, 그렇게 꿈꾸듯 사라진 도시가 있다.

 

  당신이 누구에게서나 잊혀져 있다면, 당신은 벌써 루란樓蘭처럼 사라

지고 없는 것이다.

 

 

 

 

『현대시』2015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