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시학」감상 / 이원
시학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시간과 물결의 강을 주시하며
시간이 또 다른 강임을 상기하는 것,
우리들도 강처럼 스러지리라는 것과
얼굴들이 물결처럼 스쳐감을 깨닫는 것.
불면은 꿈꾸지 않기를 꿈꾸는
또다른 꿈임을
우리네 육신이 저어하는 죽음은
꿈이라 칭하는 매일 밤의 죽음임을 체득하는 것.
중생의 나날과 세월의 표상을
모년 혹은 모일에서 통찰해 내는 것,
세월의 전횡을
음악, 속삭임, 상징으로 바꾸는 것.
죽음에서 꿈을 보는 것,
낙조에서 서글픈 황금을 보는 것,
가련한 불멸의 시는 그러한 것,
시는 회귀하느니, 여명과 일몰처럼.
이따금 오후에 한 얼굴이
거울 깊숙이 우리를 응시하네.
예술은 우리 얼굴을
비추는 거울이어야 하네.
경이에 지친 율리시즈는
멀리 겸허한 초록의 이타케가 보였을 때
애정으로 눈물을 흘렸다고 하지.
예술은 경이가 아니라 초록의 영원인 그 이타케.
예술은 또한, 나고 드는
끊임없는 강물과도 같은 것.
끊임없는 강물처럼, 본인이자 타인인
유전(流轉)하는 헤라클라이토스 자신의 거울과도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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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보고 있었어요. 사랑의 간절함이 939살 불멸을 중지하게 한다는 판타지는 익숙한 것이지만, “나도 사랑한다 그것까지 이미 하였다”, “비로 올게 첫눈으로 올게”, 이 말을 하는 얼굴은 응시하게 되지요.
모든 생을 기억하는 눈에는 심연의 슬픔과 당장의 햇빛이 동시에 담기지요. 그래서 비스듬히 보고 있다가도 시적인 순간을 경험하게 되지요.
남미 문학의 거장 보르헤스는 소설로 더 많이 회자되지만 시로 출발하였어요. “우주(다른 사람들은 ‘도서관’이라고 부르는)는 부정수 혹은 무한수로 된 육각형 진열실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그의 문장. 수수께끼를 내는 자라고 불렸다는, 그리스의 시적인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말. 거울과 강물. 회귀와 유전(流轉). 흐르는 물은 늘 다르지요. 동시에 같은 물이기도 하지요. 어디에 찍느냐, 문제는 방점이지요.
응시하는 얼굴은 비추는 얼굴이에요. 여명과 일몰은 대립적 시간이며 대립적 시간이 아니지요. 경이와 초록 중 시는 초록에 방점이 있지요. 전면적 포용이거나 초월이 된다면 거울은 텅 비게 되지요. 꿈과 죽음의 대면이 매일매일이 키우는, 초록이지요.
이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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