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의 바깥
김정진
바람이 나가라고 열어둔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왔어
좋은 징조라고 했어 뜻밖의 기회를 얻거나
행운이 찾아오는 꿈이라고 행운을
믿는 것은 아니었지만
좋은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니까
하루 종일 창문을 열어두었어
저녁이 점점 밝아오는 것이었어
거울 속의 나와 거울 밖의 내가 함께 오른손을 쓰는 것이었어
문틈에 찍힌 손톱에 고통도 없이 피꽃이 번지는 것이었어
내가 바라볼 때 창밖은 형성되고
막 완성된 풍경 속에서
막 만들어진 비둘기가 날아들어 왔어
그것을 내쫓으려고 방문을 열었지만
비둘기는 침대 끝에 앉아 나를 응시할 뿐이었고
만약 내쫓는 데 성공했다면 그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어
그러니까 당신을 만나기 위해
그만큼의 악몽이 필요했던 것이구나
서로의 바깥에서 우리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말이 아닌 말투로 이야기했어
얼음물에 손을 집어넣은 것처럼
살이 아닌 뼈가 살아나는 감각으로
바람이 들어오라고
내 방과 몸의 모든 문을 죄다 열어놓고 싶었는데
그땐 왜 그 생각을 못했는지
내가 열지 않았는데 열린 문을 보며
다시 저것을 닫아야겠다는 생각만 했어
문을 밀다가 뒤늦게 당기라는 말을 발견하고
여기엔 어떤 의미가 있을까 궁금해지는 것이었어
식탁 아래를 기어가던 흰 족제비에겐
아무리 물을 끼얹어도 꺼지지 않던 불에겐
『시인동네』2017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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