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히거나 부서지거나 정채원 우리는 그곳에 가야한다 칼날 같은 파도를 헤치고 난파선을 타고라도 가야한다 배가 부르고 포만감에 졸음이 쏟아져도 이곳에 계속 머무를 순 없다 매 순간 떠나야한다 먼저 도착한 일당이 원주민처럼 텃세를 부리며 천길 벼랑으로 등을 떠밀지 모르지만 그곳에 원주민은 없다 이미 부러진 목이 다시 부러지고 무덤 속에 있던 반쯤 부패한 입술이 깨어나 푸른 립스틱을 바를지라도 우리는 기필코 그곳에 가야한다 그곳은 도착하자마자 이곳이 되고 그곳엔 아무것도 없다 다만 가야할 이유만 있다 덧칠된 세계 정채원 고흐의 암울한 콧구멍이 여인의 젖가슴에 유두처럼 찍혀 있다 엑스레이를 비추면 파이프를 문 자화상* 아래 여인의 누드 반신상이 밑그림으로 앉아 있다 햇살 비쳐드는 방안에서 웃옷을 벗던 여인 이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