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죽 흰, 창호지 내음새 창호지 내음새가 나서 울음 둘레 같은 것도 있다 느리게 빈산이 걸어와 비치고 산의 뒤편으로 울긋불긋 꽃마을도 숨었다 마알간 숨 아래 외던 경經처럼 흰 죽 한 그릇 젓던 손은 시리고 싸락눈이 와서 흐린 발자국도 생기는 흰, 길 그림일기 나무를 그렸다 하늘을 밀쳐낸 큰 가지들과 큰 가지를 필사적으로 붙드는 작은 꽃봉오리 가지들을 그릴 때는 숨을 죽이고 바다를 그렸다 수평선을 긋고 수평선을 넘어오는 옛날의 돛단배를 그렸는데 배는 한 번도 아주 온 적은 없다 집을 또 그렸다 바다를 그린 다음 날 우리 집, 사람이 없으면 그건 우리 집 틀림없이 새를 그린다 허공에 붙박이는 새는 커다란 입을 다물 줄을 모른다 하늘을 그린 적은 없다 낮과 밤, 봄, 가을 하늘은 한 번도 제 본디를 보여주지..